Rainbow Bible Class

생활 에세이: "십계명 암송 유감"

2010.07.29 06:58

류호준 조회 수:6106

"십계명 암송 유감"

 

 

직장을 잡기 위한 애절한 몸부림은 우리 주변 사방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학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도 교수채용과 관련된 이런 일들을 간혹 경험하거나 목격한다. 몇 년 전 나는 내가 봉직하는 학교에서 신임교수 선발 심사위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며칠 동안 백여 명의 지원자들을 개별적으로 인터뷰하는 일이었다. 여섯 명 정도의 심사위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지원자들을 일일이 면접하는 고된 일이었다. 내가 일하는 대학은 기독교 대학인 관계로 교수직에 응시한 지원자들은 적어도 기독교인들이어야 한다. 지원자들 가운데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도 있지만 무늬만 기독교인들도 적지 않다. 심한 경우는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면서도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요즈음 대학교수 자리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 전공을 살려 대학 교수직을 잡는다는 것은 여간 영예로운 일이 아니고 또한 교수라면 사회적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대학에 근무한다는 것은 평생 기도제목이거나 소원일 수 있다.


어쨌든 서류심사나 인터뷰 심사를 하다보면 가끔 “가짜 교인”을 만나게 된다. 교수지원 서류 가운데 교인증명서라는 것이 있다. 최소한 지역교회에 다니면서 신앙 훈련을 받은 흔적이 있어야 그가 학생들을 신앙적으로 혹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가르칠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유 때문에 지원자에게 교인증명서를 요구한다. 문제는 “사꾸라 교인”의 경우다. 본인은 교회에 출석하지 않지만 아내가 진실한 크리스천인 경우다. 그런 경우 그는 신앙심 깊은 아내에게 교인증명서를 만들어 오라고 조른다. 아내는 고민하다가 남편과 가족의 장래를 위해 그녀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부탁을 한다. 이럴 경우 그 교회의 담임 목사는 고민이 많다. 교인 증명서를 발급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원자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데, 그가 그 교회의 교인이라고 증명서를 떼어주어야 할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 양심상, 혹은 최소한의 법률적으로도 옳지 않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박정하게 거절하면 그러지 않아도 작은 교회인데 그 가족과 그 여 집사를 잃을지도 모른다. 참 고민스럽다. 어쨌거나 내가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지원자의 서류철에는 교인증명서가 들어있다. 그는 부인의 치마 덕분에 교인증명서를 제출한 경우임에 틀림없다.


심사위원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지원동기, 가족 상황, 인간관계, 전공분야 등 다양한 질문을 한다. 때론 즉석 외국어 강의를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강의 시범도 포함된다. 대여섯 명의 심사위원들 앞에 오들오들 떨고 앉아 있는 지원자의 모습이 때론 안 되어 보이기도 하고 서글퍼 보이기도 한다. “젠장, 먹고사는 것이 뭐라고 저렇게 온갖 험한 질문까지 받아 삼켜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간혹 말도 되지 않는 질문을 하는 개념 없는 질문자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건 나는 지원자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좀 더 인간적 인터뷰가 되도록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를 써보기도 한다.


“사꾸라 교인”인 듯 보이는 그 지원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대략 40대 초반으로 보인 건장한 남자 지원자였다. 경력도 좋고 연구 업적도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아마 관광학부 교수 지원자인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주로 신앙적인 것을 물어보는 편이었고, 기독교와 관련된 몇 가지 기초적 질문을 한다. 예를 들어, “주기도문을 외워보세요.” 혹은 “복음서에는 몇 가지가 있나요?” “기도란 무엇입니까?” “성경을 얼마나 읽으십니까?” 하는 정도의 질문을 하고 이런 저런 덕담으로 내 인터뷰를 마무리 하는 정도였다.

 

그 날 내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십계명에 관한 것이었다. “십계명이란 것을 들어 보셨습니까?” “예, 들어봤습니다. 열 가지 계명이란 것입니다”라며 내게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그렇다면 혹시 십계명을 외울 수 있습니까?” 좀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아마 이런 긴장된 자리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나는 다시 물었다. “십계명을 순서대로 말씀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냥 생각나는 말씀해 주셔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람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상하다 싶어 다시 조심스레 예의를 갖추며 물었습니다. “아하, 열 가지 계명을 다 이야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두서너 가지 정도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잠시 거북하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심사위원들의 악마 같은 눈동자들이 그에게 쏠리고 있었다.

 

그 때 그 지원자가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다시 그를 위해 거들었다. “첫째는요?” 그러자 그가 당당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십계명의 첫 번째, 으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첫째, 담배피지 말라! 둘째, 술 취하지 말라! 셋째, 똑바로 살아라!” 좌중이 숙연해졌다. 이런 황당한 대답에 심시위원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웃을 수 울 수도 없고. 나는 재빨리 그 사람의 말을 끊었다. “네,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우리 모두 똑바로 살아야하지요!” “수고 많았습니다.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가실꺼죠?”라며 긴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그러자 그는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예, 죄송합니다. 반드시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후 그 사람을 학교 캠퍼스에서 다시 보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지금 즈음 그가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정겹게 손을 잡고 가까운 교회에 나가고 있으리라 소망한다. 훗날 그분도 이런 끔찍한(?) 일을 회고하며 여러 사람들 앞에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 본다. “김 선생님! 그래 우리 똑바로 살아봅시다. 한길 가는 순례자처럼 말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한길로만 걸어가 봅시다. 좌로 가면 훅(hook)이 날 것이고 우로가면 슬라이스(slice)가 날 것이니, 그러면 컷오프(cut-off)를 당해 탈락 할 것이 아닙니까!” “똑바로 걸어가자,” “똑바로 살자.” 이젠 이름도 아득한 김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하하~

 

 

혹시나 해서 십계명을 첨부합니다.


제일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제이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제삼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내라.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육은, 살인하지 말지니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지니라.

제팔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구는, 네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제십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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