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6 20:11
[77] 이사야 47:1-15
제목: 네 죄 값을 알렸다!
묵상 포인트: 교만은 인간성을 빼앗겨 야수의 마음을 갖게 된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교만한 자의 몰락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본문은 바벨론의 교만과 그 몰락에 대한 냉소적 애가(哀歌)입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모든 것이 영원할 것처럼 어깨와 목에 힘을 주고 거만스럽게 다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재산과 권력과 건강과 학벌로 그에게 견줄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고 다른 사람 알기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눈은 낙타의 눈이었습니다.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람들을 쳐다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깔보는 습관 때문에 그는 결코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습니다. 높푸른 하늘의 뭉게구름들도, 청명한 밤하늘의 별들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그에게 삶의 비극이지만 그는 그것이 불행이며 비극인 줄 몰랐습니다. 게다가 그는 “하늘 보좌에 좌정하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속으로 중얼거리기를 “나뿐이야. 나 외에 아무도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무정하고 냉정하고 비정했습니다. 긍휼과 자비는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픔은 그저 그에겐 미열(微熱)에 불과했습니다. 타인의 가난과 불행은 그 사람의 게으름이나 팔자소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사람의 심정도, 자녀를 잃어버린 이웃의 아픔도 전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의 쾌락을 즐기고 안전보호막의 울타리에서 자신만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성을 상실한 짐승이었습니다. 바벨론이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교만이란 이런 겁니다. 사람으로부터 ‘인간성’(humanity)을 빼앗아 갑니다. 긍휼과 자비, 사랑과 이해심을 상실하고 폭력성과 무자비와 같은 야만성을 갖게 됩니다.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10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천상의 왕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행이나 재난은 결코 자기에게 닥치지 않는다고 거만스럽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어느 날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왕창 뒤 엎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경은 진화론적 시간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들은 재앙과 불행들은 예측 가능한 조짐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느 순간 어느 시점이 우리의 종말이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1막 3장에 있는지 아니면 마지막 3막 5장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언제 어는 순간에라도 인생의 커튼은 내려진다는 엄숙한 사실을 기억하면 우리는 훨씬 겸손하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꾀에 넘어갈 것입니다.(10절)
| 기도 | 주님, 우리로 이성을 잃어버린 교만한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