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2 02:21
"연필로 쓰는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경우도 연필로 글을 쓴지는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지금이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만 어렸을 때부터 내 젊은 날에도 연필은 필수였습니다. 1980년에 미국 유학 시절에도 연필은 필수였습니다. 당시에는 컴퓨터라는 것이 없었기에 학교에 제출하는 페이퍼는 전동타자기로 쳤습니다. 그러나 타자기로 치기 전 원고는 언제나 연필로 작성하였습니다. 연필로 작성한 원고를 옆에 앉아 있던 아내에게 주면, 아내는 전동타자기로 타이핑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공부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공병우 식 한글 수동타자기가 있었지만 미국에 가자마자 본 타자기는 전동식 타자기였고, 엔터키만 누르면 묵직한 활자 막대기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광경이 환상적이었습니다. 그 후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개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컴퓨터도 무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286, 386, 486, 팬티엄 등 그 후 모델들은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연필은 고대적 유물로 머릿속에서 잊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연필에 관한 짧은 글을 쓰려고 책상 주위를 살펴봐도 볼펜은 눈에 띄어도 연필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기야 1985년 이후로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연필을 사용해 본 적이 없네요, 이 사실에 자못 깜작 놀랍니다. 논문이든, 설교든, 편지든, 책이든 언제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자판기를 두드렸지만 처음부터 제대로 타이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독수리 타법으로 기를 쓰면 칩니다. 오랜 시간 타자를 하다보면 어깻죽지가 쑤시고 손가락 마디 끝이 아픕니다. 뭐든지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값비싸게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잊고 있었던 연필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은 얼마 전 소설가 김훈 선생의 강연을 듣고 나서였습니다. 연필과 연필 깎기와 지우개. 자신의 작품을 쓰기 위한 유일한 세 가지 도구라는 것입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연필로 글을 쓴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름대로 “육필원고”라는 말의 뜻을 되 뇌여 보았습니다. 몸으로 쓰는 원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쓰는 글, 혼신의 힘을 다해 쓰는 작품, 심혈을 기울여 써내려가는 이야기로 바꿔 말할 수 있으리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자판기를 두드립니다. “그렇지, 두드리는 것이지 꾹꾹 눌러 쓰는 것은 아니지!” 물론 컴퓨터로 글을 쓰면 여간 편리하지 않습니다. 자판 위의 몇 가지 기능을 익히면 글을 쉽게 고치고, 지우고, 옮겨 싣고, 퍼오고, 퍼가고, 보내고, 가져오고, 저장하고, 앞뒤로 바꾸고, 끄집어내고, 덮어씁니다. 활자를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하고 다양한 글씨체로 멋을 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색상도 입힐 수 있습니다. 행간도 행렬도 일괄적으로 맞추거나 고칠 수도 있습니다.
연필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구도자의 심정이 아니면 연필로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글자 말고 글말입니다. 구도자처럼 연필로 글을 쓰면 언제나 느립니다. 힘이 듭니다. 천천히 가야 합니.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야 합니다. 온 몸으로 써야 할 겁니다. 온몸이 욱신거립니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들을 질서 있게 줄을 세웁니다. 하나씩 불러내러 손끝에서 공책(空冊)으로 옮겨 가게 합니다. 공책이 가득 차게 됩니다. 깊은 생각들, 사람들 이름, 온갖 이야기들, 인간사 등이 공책을 가득 메웁니다. 글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옵니다.
아주 어렸을 적, 아마 서너 살이 되었을 때, 어느 비오든 날 저녁 아버지는 일에서 돌아오시면서 연필 한 다스와 공책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HP 연필이었을 겁니다. 내 등 뒤로 오신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품으시면서 조막만한 내 손을 움켜잡으셨습니다. 함께 공책에 글자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그 후로 연필을 잡을 때마다 그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 등과 아버지의 가슴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상야릇한 포근함과 따스함, 삐뚤빼뚤 거리는 내 연필 잡이 놀림을 꼭 움켜잡고 함께 네모반듯한 도형 안에 기억 니은 디귿을 꾹꾹 눌러 집어넣는 기막힌 기술, 빼곡히 들어찬 공책의 글자를 보며 안도감과 성취감에 기뻐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얼마 전 출판사 김영사의 임프린트인 포이에마의 강영택 대표가 또 다른 출판사인 비아토르의 김도완 대표와 함께 나를 방문하였습니다. 출판에 관한 일, 출판계 소식, 지금 준비 중인 책들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습니다. 대화 가운데 “연필로 쓰는 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곤 헤어졌습니다. 2주가 넘은 오늘 어디선가 택배가 왔습니다. 예기치 않은 택배였기에 호기심에 천천히 뜯어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이게 뭐지?”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헐. 포장된 연필 세 자루였습니다. 지우개가 딜린 연필 세 자루!
내 어렸을 때는 보통 HB 연필을 사용했습니다. HB는 Hard Black의 약어로 연필심이 단단하고 까만 연필입니다. 오늘 내가 받은 연필의 브랜드는 아주 유명한 Blackwing 602입니다. 1934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이 “전설의 연필”은 당시 한 자루에 50센트에 판매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한 다스 12자루에 20달러에 판매된다고 합니다.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사용했다고 광고를 하는데, 그들 가운데는 아마 여러분들도 아시는 유명인들이 있을 겁니다. John Steinbeck, writer; Chuck Jones, animator; Stephen Sondheim, composer; Faye Dunaway, actor; Leonard Bernstein, composer; Eugene O’Neill, playwright; Aaron Copland, composer.
앞으로 글을 쓸 때 오늘 받은 연필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차피 자판기를 두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필은 자판기 옆에 놓을 작정입니다. 어린 시절 처음 글자를 배우고 쓸 때를 기억하며, 글을 쓸 때는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야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정성을 들여 육필원고를 쓰듯이 글을 써야 한다는 가르침의 상징으로 옆에 두렵니다. 자판기로 글을 쓰다가 지워야할 때는 delete 자판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모니터 위로 “후~~” 하고 바람을 불어 지우개 찌꺼기를 털어버리는 예식을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쓰다가 틀리면 지우고 쓸 수 있다는 건 퍽 좋은 일인 듯합니다.”(강영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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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성경에 "연필"(鉛筆)에 관한 문구가 있을까 궁금하실 것입니다. 있기는 합니다. 물론 히브리어 원문 비평과 해석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연필"에 대한 언급은 있습니다! 고난을 겪는 욥은 자신이 처한 혹독한 처지와 답답한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철필과 납(연필)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욥 19:23-24). 철필로 쓰는 글, 연필(납)으로 쓰는 글, 이게 온 몸으로 쓰는 글입니다!
Blackwing 602, Half the Pressur, Twice the Speed by Palomino
교수님 ~ 블랙윙 602 연필이 무척 탐스럽고 고급져보입니다 ^^ 하기사 저도 샤프펜슬은 써도 연필은 안 쓴지 무척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연필깎기로 열심히 연필을 돌려 뾰족하게 만들어서 보관하곤 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