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0 00:21
“제자도의 비용”
행전 18:8
예수를 믿고 따르려면 반드시 치러야할 대가가 있습니다. 제자도의 비용(Cost of discipleship)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드는 비용을 지불을 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얄팍한 계산에 따라 예수의 팬(fan)을 자처하는 무리들일 수는 있지만 진정 예수의 참 제자들일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좁은 길입니다. 이 사실을 현대적 기독교인은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주 먼 옛날 초기 기독교회가 이곳저곳에서 생성되고 있었을 때, 바울 일행이 고린도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관례대로 안식일이 되면 유대교 회당에 들어가 강론하곤 했습니다. 당시 고린도에 있던 유대인 회당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있었던 회당의 장(the synagogue ruler)인 그리스보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자기 온 집안이 믿음의 길로 들어서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훗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의 손으로 친히 세례를 베푼 고린도교회 교인 한 사람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합니다. 그리스보입니다. 후에 고린도 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고전 1:14). 그러나 그리스보가 예수를 처음 믿기로 작정했을 때, 그는 결코 가벼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내린 결정 뒤에 무엇이 따르게 되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예수를 믿고 따르기로 했을 때 그는 상당히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회당 장”이란 명예로운 직함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그가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받았던 존경과 명예를 하루아침에 몰수당하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동료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란 낙인이 찍히게 되고, 공동체로부터 소외를 당해야 했습니다. 경제적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관계 역시 단절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직면한 소외는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던 옛 세상과의 단절이며 죽음을 경험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따르는데 지불해야할 비용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보는 그가 지불해했던 것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예수와 그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가장 위대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팔아 지불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그를 따르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위험천만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제자도(discipleship)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걸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In a cove on Bond Falls Flowage. MI, by Ralph McConahy
그리스보처럼 제자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