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썩어빠진 관료사회와 한심한 대중들”

행전 16:16-22

 

아주 오래전 그리스 빌립보 지방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점괘를 잘 푸는 용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의 유명한 (귀)신에 들려 신탁을 받아 사람들의 점괘를 풀어주고 돈을 받는 여자였습니다. 그녀의 신분은 노예계급에 해당하는 하녀였기에 그녀에 대한 소유권은 어느 자유민 부부에게 있었습니다. 그 부부는 자그마한 역술원을 차려놓고 그녀를 부려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수입이 상당했습니다. 수입 전부는 주인 집 차지였습니다. 노동력 착취와 갑질 행태의 전형적 케이스였습니다. 신들린 점치는 여인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주인 앞에 그 날 벌어들인 수입 전부를 다 바쳤습니다. 주인으로부터 그저 숙박 정도만 보장 받으면 여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그곳을 지나던 유랑 설교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라는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악귀를 쫓아내었습니다. 이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그 귀신들린 여자를 이용해서 돈벌이를 했던 그녀의 주인이 들고 일어선 것입니다. 용역을 동원해서 폭력적으로 유랑설교자 바울과 실라를 끌어다가 그 지역 치안 담당 경찰들에게 넘겼습니다. 사건의 진짜 근거를 은폐하고 진실을 왜곡한 채 고소장을 제출한 것입니다. 고소장 안에는 자신들의 돈벌이 사업을 방해받았다는 내용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사는 지역 주민들을 선동하는 내용의 고소장이었습니다.

 

고소장에 명시된 내용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인종 차별적 내용을 담아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유랑설교자들은 유대인들이고 우리는 로마사람들이다!” 로마시민권의 우월성을 드러내면서 이류급 인종인 유대인들을 차별하는 모습입니다. 지역민들이 대부분이 로마인들인 것을 빌미로 타국인(반유대적 정서)을 싸잡아 사회분열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인종 프레임을 건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 일행이 빌립보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고,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 선교사들의 활동이 당시 그 지역(빌립보)에 자리 잡혀 있는 로마의 생활 질서를 붕괴시킨다는 고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굴러 들어온 유대인들이 평온한 로마식 생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의 주인들이 사건의 전말과 진실을 은폐한 채로 이렇게 군중들을 선동하자 군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유랑 설교자들을 고발하였습니다. 선동에 약한 군중들입니다. 옳고 그른 것은 따지지 않습니다. 법보다 대중의 정서입니다. 졸부 주인의 선동적 연설은 빌립보 주민들 여론몰이에 성공합니다.

 

*****

 

현대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여론몰이”(대중인기 영합주의, 포퓰리즘, populism))가 최악의 상태로 나타나고 있는 실례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육법(六法 = 헌법ㆍ형법ㆍ민법ㆍ상법ㆍ형사소송법ㆍ민사소송법) 위에 ‘국민정서법’(여론법)이라는 게 있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심각한 사회의 병리현상입니다. 법은 언제나 뒤로 물러가 있습니다. 지역주의 정서나, 민족주의적 정서나, 집단주의 정서가 그런 것입니다. 이런 정서에 걸리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매장됩니다. 살아남지 못합니다. 법적으로 맞는지 틀린지를 살피는 일에도 마저 강한 대중 정서가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건 아니지요! 대중의 의견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휩쓸려 달리는 가축본능을 드러낼 때도 적지 않게 많습니다. 적어도 그 땅의 법에 따른 냉철한 판단이 결핍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대중들의 고발 고소 내용의 진위여부를 가려야할 지방 경찰청 관리들도 진실규명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중들의 고발고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랑 설교자들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명령하자 아랫것들은 무지막지하게 그들을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나쁜 놈들입니다. 어느 사회든 이런 인간들 때문에 정의가 실종되고, 억울한 일들이 발생하게 되지요. 무사안일 보신주의 행태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구타당하고 대중들 앞에서 수치를 당했습니다. 복음 전파하다가 당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였겠습니까? 정당한 변호의 기회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타지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인종 프레임에 걸리고, 집단의 풍속 프레임에 걸려 억울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어쨌든 이 사건의 전말과 진실 규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바울과 실라는 기득권 집단의 린치를 당했고 결국 그들의 몸은 거적때기처럼 너덜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화가 납니다. 이런 일들이 지금 버젓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Sunrise at StoatinBrae-Gull Lake. MI.

크기변환_평온한 아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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