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김훈과 육필원고"

2018.04.28 02:01

류호준 조회 수:609

"김훈과 육필원고"

 

 

엊그제 소설가 김훈 선생이 “나의 삶과 글쓰기”란 주제로 백석예대에서 특강을 했다. 그 시간대에 있는 나의 구약 강의 수강생 전원을 김훈 선생 특강에 참석시켰다. 류호준을 김훈으로 대체한 셈이다.

 

김훈 선생은 자신이 1948년생이라고 밝히면서 가난과 배고픔의 시대를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로 강연의 서두를 꺼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공감대가 컸다. 6.25를 지나면서 군가 교가 뽕짝과 같은 규격화된 노래만을 듣다가 1960년대 비틀즈의 노래를 들었을 때 김훈은 황홀한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한다. 일종의 세계관의 전복이었다고 고백한다. 한국에선 신중현과 그의 록 뮤직이야 말로 전통적이고 고답적인 뽕짝 세계관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 거인이라 칭송하기도 한다. 문명의 충돌을 경험하면서 살아온 그는 현시대의 피상성과 가벼움을 에둘러 비판한다. 실체에 천착하지 못하는 조급함, 표피의 현상에만 관심을 두는 가벼움 말이다.

 

70세가 된 지금까지 김훈은 그 흔한 자동차 운전도, 자동차 면허증도 없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나는 소스라칠 뻔 했다. 정말로? 글쟁이 김훈은 지금도 컴퓨터도 없단다. 물론 두드릴 자판기도 없겠지. 글 쓰는 사람 김훈에겐 세 가지 문방구 용품이면 충분하단다. “연필”, “지우개”, “연필 깎기.”

 

연필이어야 한단다. 볼펜이나 만년필은 지울 수 없어서 아니란다. 연필을 고집하는 이유다. 지우개 없는 연필을 상상할 수 없으리라. 연필에 힘을 주어 꾹 눌러 쓰다보면 종종 연필심이 부러진다. 연필 깎기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다.

 

누군가 그의 집필 분량에 대해 말하는 소릴 건네 들었다. 하루에 5장을 쓴다고. 깜짝 놀랐다. 하루에 A4용지로 다섯 페이지라고? 나도 원고를 써야할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하루에 A4용지로 5장을 쓴다는 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란다. A4용지로 5장이 아니라 200자 원고지로 5장이란다! 헐. 헐. 겨우 원고지 5매라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써내려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그것도 겨우 5매 정도! 서예가나 미술가처럼, 아니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곡을 연주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처럼, 아니면 도를 닦는 사람처럼, 글을 쓰는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글을 써내려간단다. 온몸으로 쓰는 게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시 어깨를 거쳐 팔목으로, 다시 손끝에 온 힘을 주어 글을 쓴다. 이게 “육필원고”(肉筆原稿)이리라. 말 그대로 몸으로 써내려가는 원고이다. 땀 냄새가 묻어있는 원고이리라. “육필원고!”

 

연필, 지우개, 연필 깎기로 상징되는 김훈의 “육필원고” 고집은 표피적 관찰과 피상적 이해를 거절한다는 말로 들린다. 글은 몸으로 써야한다는 김훈의 말에는 삶의 구체성을 간과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권고가 담겨져 있었다. 일상성을 상실한 채로 거대담론과 피상적 언설로 강단을 어지럽히는 설교자들에겐 속살을 찌르는 비수처럼 느껴졌다.

 

김훈의 강연은 긴 울림이 있었고, 영혼을 맑게 해주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Moonlight)은 반드시 “아다지오 소스테누토”(Adagio Sostenuto)로 쳐야하듯이, 김훈은 육필로 원고지를 채울 때 “천천히 꾹꾹 눌러서” 써야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빨리빨리”를 외치며, “대충대충” 넘어가는 이 시대에 “연필, 연필 깎기, 지우개”로 써내려가는 김훈의 육필원고는 분명 시대착오적이지만 동시에 시대 초월적 저항의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가장 심오한 텍스트를 다루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육필원고”에 부끄럼을 알아야하지 않겠나?

 

*******

 

그의 강연을 듣고 나서 그가 지나가면서 던진 한 두 화두에 나도 몇 자 덧붙여 적어본다

 

 

[육필 원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한 글자 한 글자 아로새긴다.

힘은 어깨를 타고 소리 없이 손가락 끝에 모아진다.

삶의 무게를 손마디에 실어 모질게 눌러 쓴다.

고된 몸뚱이를 연필 삼아 삶의 주름진 자국을 남긴다.

 

[나이 듬]

나만의 윤곽성은 흐릿해지고

나이테의 선들은 희미해진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는 분명해지고

바구니는 너그러움을 넉넉하게 담아낸다.

 

[신앙의 구체성]

인류를 사랑하겠다고 허공에 소리치지 말고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하는 부지런한 손발이 되세요.

 

"김훈의 인문학 산책" 사진, 이범의 목사

김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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