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스승인가 아버지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 4:15)

 

 

번역이라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잘못되면 번역은 반역이 된다지요? 그래서 번역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성경번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원언어(source language)와 대상언어(target language)를 다 알아야할 뿐만 아니라 두 언어가 대표하고 있는 각각의 두 문화들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좀 이상하게 느낌이 다가오는구절 하나를 소개합니다. 고전 4:15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섬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그 당시의 스승들처럼 그들을 가르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글 번역 성경을 그대로 이해한 해석입니다. 분명 아버지와 스승을 대조적으로 놓고 말씀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동양사회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우리들로서는 뭔가 이해가 되지 않는 대조입니다. 적어도 유교문화에서 자란 우리들은 군사부 일체(君師父 一體)”라는 문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동일한 권위를 갖고 있는 분들로 존경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군사부에서 을 빼고서라도, 우리는 사부(師父)”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사부(師父)의 문자적 번역은 스승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사부란 스승을 아버지처럼 높여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삶과 인생에 대해 진정으로 배울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분에게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스승이라는 단어는 요즈음 흔히 쓰는 선생이란 말과는 다른 어감을 줍니다. 학원 선생도 선생이요, 학교 선생도 선생입니다. 태권도를 가르치는 선생도,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도 선생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스승이라 말할 때는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스승은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는 분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고린도의 교인들 나는 당신들에게 스승이 아니었다!”라고 말한 것은 어딘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한글번역에 따르면 스승은 좋지 못하고 아버지는 좋다는 비교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문점을 갖고서 본문을 다시금 읽는다면 사도바울이 가리키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라 학원 선생”(여기서 학원 선생이란 직업을 의도적으로 폄하할 생각은 없음을 기억하시라!)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스승으로 번역된 단어의 원문(헬라어)를 찾아보면, 다른 곳에선 몽학(蒙學)선생혹은 초등교사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3:24,25). “몽학선생이란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에게 배움을 덧입혀주는 선생이란 뜻입니다. 고린도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부요한 집에는 어린 자녀들을 전담하여 가르치는 노예계급의 선생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를 학교에 데리고 다니거나 글자를 깨우쳐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몽학 선생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들 대부분은 의무감 때문에 그런 일을 하였습니다. 그 집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들에게 맡겨진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복음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는 몽학선생과 같은 자들이 당시에 수없이 많지만 자기는 그런 식으로 복음을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전한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생명을 낳듯이 그런 식으로 복음의 자녀들을 낳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으로 번역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의 문맥 안에서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번역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 글을 읽은 후에 여러분들은 본문의 뜻 파악에서 제대로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산고를 겪으면서 낳는 것이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란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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