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울지마 주안아"

 

 

내가 섬기고 예배하는 교회에는 “교회의 찬송”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찬송을 “교가”(敎歌)라고 부릅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에 “교가”(校歌)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셨을 터이지만 교회에 교가(敎歌)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실 겁니다. “교회의 찬송”을 정한 것은 목회자의 목회철학 내지 교회관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지역교회의 담임 목사가 된 것은 1986년이니 지금부터 33년 전이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목회 철학과 교회관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교회는 “천성(天城)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거죠. 교회를 구성하는 교인들은 누구여야 할까?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할까? 교회는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이었습니다.

 

이 땅에 살지만 이 땅에 속하여 사는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 이 세상 안에 살면서 이 세상에 대응하는 “대응 문화”(counter culture)를 만들어 가면서 사는 사람들. 하늘 나그네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하늘도시를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 공동체. 빨리 가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무리들.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나라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 세상의 문법체계를 배척하고 자신들만의 신앙어법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 의해 왕따 당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진정한 왕을 따라 나선 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 비록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오합지졸처럼 보여도 한분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헌신으로 깊은 연대의식을 가진 사람들. 함께 걷는 길벗의 무거운 짐을 대신 기꺼이 짊어지려는 사람들. 입보다 발로 사는 사람들.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경계선을 넘어서 한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 인종 학연 지연 신분상의 장벽들을 과감하게 무너뜨리는 사람들. 삼 겹줄의 강함을 믿는 사람들. 열려진 팔을 갖고 있는 사람들. 하늘나라의 산수 계산법을 신봉하는 사람들. 기도와 찬양의 힘을 믿는 사람들. 천성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살아내야 하는 가치들을 저 위로부터 공급받는 사람들.

 

*****

 

“천성(天城)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는 교회.”라는 문구에 적합한 이미지를 성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절대군주 바로의 폭정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힘겹게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떠올랐습니다. 출애굽기에서입니다. 유월절의 밤에서 시작된 출애굽 행진은 홍해를 건너고 막막한 광야를 지나게 됩니다. 광야 여정을 지나면서 그들은 불과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하늘 양식도 공급 받습니다(출 12-14장; 출 13:17-22; 출 16장). 그리고 40년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도착합니다(수 3장).

 

출애굽기 전체를 포괄하는 찬송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찬송가 전체를 찾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찬송이 377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가를 교회의 “교가”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찬송의 가사는 1745년에 윌리엄 윌리엄스(William Williams)가 찬송 시로 작시를 했고 멜로디는 영국 남부 웨일즈의 전통적 멜로디를 사용하여 존 휴스(John Hughes)가 1907년에 작곡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en.wikipedia.org/wiki/Cwm_Rhondda 를 참조하세요.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나는 순례자이니

              나는 심히 연약해도 주는 강하옵니다.

              하늘 양식 하늘 양식 먹여주시옵소서

               먹여주시옵소서

 

               수정 같은 생명수를 마시도록 하시며

               불과 구름 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소서.

               나의 주여 나의 주여 힘과 방패 되소서.

               힘과 방패 되소서.

 

                요단강을 건널 때에 겁이 없게 하시고

                저기 뵈는 가나안 땅 편히 닿게 하소서.

                영원토록 영원토록 주께 찬양하리라.

                주께 찬양하리라.

 

*****

 

이 찬송은 내가 섬기는 교회의 공식적인(?) “교가”이기 때문에 예배를 마칠 때에 모든 회중들이 일어나서 함께 이 찬송을 힘차게 부릅니다. 특별히 주일 오후 예배 시에는 이 찬송을 부름으로써 예배가 공식적으로 끝난다는 신호곡이기 때문에 교우들은 이 찬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심지어 3살짜리 어린아이 ‘김주안’이도 그렇습니다.

 

김주안 군은 갓난아기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이제는 어엿한 3살짜리 씩씩한 어린아이이지만 주일이 되면 언제나 엄마와 아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고모네 가족 등과 함께 교회에 출석합니다. 주일 오후 예배에는 본당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아래층 주일학교 방에서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주 오후 예배를 마치고 목사들이 늘 그렇듯이 나는 먼저 교회당 입구 대문에 나와 교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만치서 눈물을 훔치면서 아빠 품에 안겨 울고 나오는 주안이를 보았습니다.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 흔적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아직도 뭔가 서러워서 울고 있었습니다. 주안이를 쳐다보며 주위 사람들이 웅성 웅성거리며 웃기도 하고 혀를 차기도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무슨 영문인 줄 모르던 나는 물었습니다. “어쩐 일로 주안이가 울었어요?”라고. 그 질문이 내 입에서 나오기 전에 아래층에서 주안이와 함께 예배를 드렸던 부모들과 다른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사님이 교가를 부르지 않고 예배를 마쳤다고 주안이가 저렇게 서럽게 울었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라고요?” “377장 ‘전능하신 주 하나님 나는 순례자이니’~~ 그 찬송을 부르지 않고 예배가 마쳤다고 저렇게 서럽게 울었어요. ㅠㅠ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찬송을 펴서 차근차근 소리 내어 불렀습니다.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세 살배기 주안이의 마음과 뇌리 속에 저 찬송가의 멜로디가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구나. 비록 그 가사의 뜻은 잘 모르겠지만, 자라면서 교회에서 배웠던 저 찬송의 멜로디는 평생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되겠지. 주안이는 우리 어른들이 배워야할 가장 소중한 것을 가르쳐주었구나. 주안아, 평생 신앙의 순례자로서 살아가야할 너에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평생 하늘 양식으로 채워주시기를 이 할아버지 목사님이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약속하나 할께.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예배 마칠 때 교가(敎歌, 377장) 제창은 빼먹지 않을게. 사랑한다 주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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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1: 하마트면 내가 내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겠구나 생각하니, 다음부턴 절대로 어린 아이라도 시험에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라리 그 목에 큰 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마태 18:6)

 

추신 2: 이 찬송을 장엄한 회중 찬송으로 부르는 아래 영상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fp6rdAgRrY

 

추신 3: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드워즈의 시 “내 마음은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My heart leaps up)안에 들어 있는 명구입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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