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강팔봉씨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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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1961). 서울서 살던 나는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온 가족이 두매 산골 같은 시골 과천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기와집만 보았던 어린 내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이상했다. 초가집에 호롱불에, 낮에는 친구들 따라 소를 끌고 풀 먹이러 들에 나갔고 겨울에는 지게를 지고 땔감 나무를 하러 산으로 다니던 시절이었다. 물론 보자기로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십리 바깥 읍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허술한 초가집 끝에 이어지은 방 한 칸에 우리 집 5식구가 세를 들어 살았다. 주인아저씨는 우리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하거나 약간 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들 셋이었는데 막내가 나와 동갑내기였고 이름은 용성이였다. 용성이는 서울서 이사 온 시골 새내기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시골생활에 익숙하도록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논농사, 밭농사, 뒷간치우는 것, 나무하는 것, 지게 지는 것, 마당에 멍석 펴는 것, 소여물 쑤는 것, 작두질하는 것, 풀 베로 가는 것, 낫질하는 것, 썰매 만드는 것, 흑 벽돌 만드는 것, 새끼 꼬는 것, 아궁이 불 지피는 것, 군불 때는 것, 지푸라기로 호야 닦는 것 등등.

 

 

용성이 아버지는 얼굴이 쭈굴쭈굴하고 시커먼 주름으로 가득 찼는데, 어린 내가 볼 때도 세상 고생은 다하신 어른이었다. 찌들게 가난하게 살았고 아내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애들만 데리고 힘들게 사시는 분이었다. 내 형 뻘 되는 아들들은 남의 집 논 밭일을 하였다. 그래도 언제나 장난치고 웃는 형들이었다. 아침이면 주인아저씨는 늘 지게를 지고 어디론가 나가셨다. 저녁 늦은 무렵 아저씨가 돌아오셨다. 산에 가서 팬 꽃나무들을 지게에 싣고 내려오신 것이다. 아마 이틀이나 사흘 걸러 그러셨다. 산에서 오시면 앞마당에 지팡이로 지게를 받쳐놓고 담배 한대를 피우셨다. 나는 종종 셋방 방문을 빼꼼히 열고 아저씨의 담배연기를 쳐다보았다. 하늘을 향해 후~ 부신다. 구름처럼 떠돌다가 사라진다. 봄이면 거의 똑같은 광경을 봤다. 지게 위에 실어놓은 진달래 꽃나무 말이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아저씨는 진달래 꽃나무를 지게에 싣고 어디론지 가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과천의 남태령을 넘고 서울 용산 어딘가 수십 리 되는 길을 걸어 팔고 오셨다. 진달래 꽃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날인가 집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주인아저씨가 이틀째 방에서 나오시지 않는다. 친구 용성이에게 물어보니 엊그제 산에 진달래꽃나무 패러 갔다가 뱀에 물렸다는 것이다. 왼쪽 허벅지를 물렸는데 아버지는 아파서 끙끙대며 누워 계시다는 것이다. 궁금하기도 해서 물린 데는 어떻게 하신 것이야?”라고 물었다. “, 젖은 흙을 물린 곳에 바르셨어!” “그러면 뱀의 독이 흙으로 다시 빠져나간데.”

 

 

그리고 며칠 후에 아저씨는 돌아가셨다. 크게 죽음을 슬퍼할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용성이 아버지의 존함은 강팔봉. 강팔봉씨는 연분홍 진달래꽃처럼 산 속에 외롭게 피었다가 외롭게 지셨다. 그 후로부터 이른 봄 산 속 외로이 피는 연분홍 진달래를 보면 눈물이 난다. 분홍빛 눈물 말이다. 팔봉이 아저씨가 유독 그리워진다. 그렇게 사시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나신 팔봉 아저씨의 영전에 연분홍 진달래꽃을 바친다. 요즘 내가 동네 관악산에 지팡이를 들고 진달래를 보러가는 이유다.

팔봉.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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