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앙 에세이: “순례자의 고백”

2020.03.22 10:32

류호준 조회 수:107

순례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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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운 어두운 시간대에 살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매우 유동적입니다. 대규모 공포의 마성 군단이 지구를 침공하고 있습니다. 묵시론적 일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생아실과 영안실의 거리는 문지방 하나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선 어제 밤사이에 79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를 갖춘 경건한 장례식은 이미 오래전 일들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는 두려움과 공포로 패닉상태가 되었습니다.

 

 

홀연히 전 세계를 강타한 대재앙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약한지를 여실하게 드러냅니다. 이 사실을 고통스럽게 뼛속까지 느낍니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어느 쪽으로 튈지 한 치 앞길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빠져 나올 수 없는 수렁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위대한 박사들과 학자들, 허풍 떨던 정치가들과 유명인들 모두 지푸라기처럼 허겁지겁 주저앉습니다. 인간의 허약성과 삶의 취약성을 온 몸으로 전율하며 뼈저리게 느낍니다. 생명의 허망함과 삶의 덧없음이 공포와 두려움의 가면을 쓰고 시시각각으로 삶 존재 자체를 짓누릅니다. 지구에 사는 독특한 인종으로서 우리 인류가 정말로 앞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인류의 미래는 불안하고 위태합니다. 낙원에서 추방된 첫 부부가 어둠속으로 걸어가며 잠시 힐끗 뒤돌아보면서 내뱉은 넋두리, “아아, 우리가 살았던 곳이 낙원이었었구나!”처럼 이제 인류라는 독특하고도 기이한 종(, species) 역시 실낙원의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인류는 얼마나 자만하고 교만했던가요? 양차세계대전을 겪었고 위대한 제국들의 몰락들을 보았습니다. 냉전 시대를 종식하고 인류는 평화를 구가하며 물질만능의 신을 주신(主神)으로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영원의 영역인 하늘을 쟁취할 수 있듯이 너도 나도 바벨의 탑을 경쟁하듯이 쌓아올렸습니다.

 

 

그러나그러나하늘을 향해 탑을 쌓으면서도 그들은 진정 하늘을 쳐다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교만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가 내려다보며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그분과 맞장을 뜨며 그 하늘을 비웃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책임진다. 이 세상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라면서 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알기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집단지성의 위대성인줄 착각하였습니다. 이론적 무신론자들은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은 막강하였습니다. 학문이라는 미명(美名)아래 신은 자리를 잃었습니다. 투명한 신, 좀비처럼 전락했습니다. 종교 안에서도 하나님은 오래전 그 권위와 명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짓밟혀 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소위 실천적 무신론자들로 가득한 종교계가 된 것입니다. 지금의 신인류는 하나님의 왕권을 찬탈하여 폐위(廢位)시키기 위해 부단히 역모(逆謀)를 꾀했습니다. 모든 것은 자신들의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대 역병(疫病) 코비드-19는 자기만족과 자아도취에 빠져 흐느적대는 이 세상을 향한 하늘의 경종(警鐘)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스스로 거드름을 부리며 자족해하는 이 교만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확성기가 아닌가요?

 

 

오래전 연약하기 그지없던 한 신앙공동체는 이렇게 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세상을 향해 단호히 외쳤습니다. 허망하기 그지없는 세상 권력자들과 지도자들과 군왕들과 현자들과 스스로 똑똑하다는 지성인들을 향해 담대하게 소리쳤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구나!”(2:1-3)

 

 

그리고 그들은 알았습니다. 하늘에 계신분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 그들은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 작금 세상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들은 제3의 눈으로 이 사실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2:4)

 

 

그럼에도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두려움과 공포의 현실 속에서 이렇게 그분께 묻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요?”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이 세 가지 의문사(“?”, “언제까지?” “어디에?”)는 아마 이 세상에서 천성을 향한 순례자로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반복해서 외치는 외침일 것입니다. 우리의 이해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 너머의 하나님”(“God beyond God”, Paul Tillich)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오늘의 순례 길을 걸어가야 할지 모릅니다. 세상 어느 것으로도 위로받을 길이 없는 순례자의 비애(“inconsolable secret”, C.S. Lewis)를 품고, 천지만물의 창조자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회의와 의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오늘도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아니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경외(두려워)하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는 대재앙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하기를 간구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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