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다!”

- 행전 15:39 -

 

교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신 일이 있겠죠? 멱살 잡고 싸우는 것 말고요. 감정이 상해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것 말입니다. 이런 일이 전혀 없는 교회라면 지상에 있는 교회가 아닐지 모릅니다. 아마 웬만한 교회에서 한두 번 정도는 보았으리라.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해야 할 겁니다.

 

근데 목사님들이 대놓고 싸우는 것을 보셨나요? 혹시 교회 안에서 목사와 장로가 회의하다가 소리 지르며 대판 싸우는 것을 보셨나요? 총회나 노회에서 목사들끼리 의견을 달리해서 목청을 높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는 광경을 보셨나요? 순진한 교인들이 그 광경을 보았다면 충격이 엄청 클 것입니다. 시험에 들어 교회에 더 이상 다녀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나도 유명한 목사님들이 상대방에게 삿대질을 하고 소리 지르며 격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는 정이 뚝 떨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최근 사도행전을 읽다가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영적 거인들이 대판 싸움하는 광경에서 심호흡을 하며 멈추어 섰던 일이었습니다.

 

시리아 안디옥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존경받는 두 지도자였던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일어난 싸움이었습니다. 둘 다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였지만 엄연히 바나바가 선임이었고 바울은 후배였습니다.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면서 바나바는 조카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제안했고 바울은 이전에 마가요한이 선교현장에서 무단이탈해 집으로 돌아간 전력을 문제 삼아 같이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이견은 좁혀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었고 마침내 감정이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누가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심하게 다투었다”(paroxysmos)고 묘사하는데, 이 표현은 “논쟁에서 표현된 격앙된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랍니다. 한마디로 극한 감정으로 싸웠다는 말입니다. 삿대질은 물론, 핏대를 세우고, 목청을 높이고, 험한 말까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기둥 같은 두 지도자,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두 목사님이 대놓고 싸운 것입니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를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그들 싸움의 심판관은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나는 그저 두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격렬하게 싸우는 광경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디옥 지역 일대에 두 지도자의 대판 싸움 이야기는 급속도로 퍼져 나갔을 것입니다. 안디옥의 초년 신자들, 기존 신자들, 바울을 좋아했던 교인들, 바나바를 따랐던 교인들의 마음에는 심한 멍이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아마 속이 상했거나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싸움 광경을 기록하고 있는 구절을(행전 15:39)보면서 나는 성경에 대해 그리고 교회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성경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실 내 마음 속에는 저런 볼썽 사나운 광경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존경했던 위대한 사도 바울과 바나바이기에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차 없이 사람들의 어두운 면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큰 나무에는 그림자도 크듯이 말입니다. 인간 이해에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말해야 할까?

 

둘째, 교회에 대한 생각입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의 심한 다툼 이야기를 통해 나는 지상교회를 다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판 싸우고 갈라지기까지 하는 추한 모습을 보면서, 지상 교회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기관이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또한 서로 “내가 맞다, 내가 옳다!” 하며 격하게 싸우고, 다시는 보지 않을 듯 분노의 콧김을 내뿜으면서 갈라서는 대신에 좀 더 “평화롭게 갈라서는 편”을 택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일 저런 일로 심하게 다투는 일들이 다반사입니다. 서로가 옳다고 하니, 서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니, 내가 볼 때 예수께서 하늘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오시기 전까지는 결코 격한 싸움들이 해결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발 더 이상 목숨걸고 싸우지 말고 격한 감정을 추스르고 조용히 평화롭게 갈라서세요. 바울과 바나바의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으시고 “조용히 평화롭게 갈라서세요!”

 

"비밀의 정원"

비밀의 정원.jpg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성서교실이 http://www.rbc2020.kr 로 리뉴얼하여 이전합니다. 류호준 2020.08.24 5692
공지 "무재개 성서교실은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5] 류호준 2018.03.29 3637
668 일상 에세이: “적당하게”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2] file 류호준 2018.04.16 537
» 신앙 에세이: “심하게 다툰 끝에 서로 갈라서다!” [1] file 류호준 2018.04.13 734
666 일상 에세이: “차간(車間) 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1] file 류호준 2018.04.09 590
665 일상 에세이: “너희가 호롱불을 아느냐?” [1] file 류호준 2018.04.07 624
664 부활절 에세이: “수요일 즈음 갈릴리에서 그분을 뵈오리라!” [3] file 류호준 2018.04.02 765
663 수난주간 묵상: "40일간 광야에서(3)" file 류호준 2018.03.28 449
662 수난주간 묵상: "40일간 광야에서(2)" file 류호준 2018.03.28 567
661 수난주간 묵상: "40일간 광야에서(1)" file 류호준 2018.03.28 614
660 청어람 강연: "시인과 예언자와 설교자" file 류호준 2018.03.26 661
659 청어람 강연: "예언자들의 노래"중에서 file 류호준 2018.03.25 670
658 청어람 강연: “예언과 역사"(역사의 주권자) file 류호준 2018.03.24 668
657 청어람 강연: "예언서는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file 류호준 2018.03.24 506
656 일상 에세이: "너무 어려운 전문용어들" file 류호준 2018.03.15 611
655 “텅 빔과 가득 채움”의 감동적 이야기 file 류호준 2018.03.14 1115
654 신앙고백: “하나님, 당신은.....” file 류호준 2018.03.13 704
653 일상 에세이: “집으로....” file 류호준 2018.03.13 619
652 사순절 묵상: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file 류호준 2018.03.12 2332
651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 종교” [2] file 류호준 2018.03.08 1019
650 신앙 에세이: “보냄을 받은 사람들” [1] file 류호준 2018.03.02 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