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 에세이: “집으로....”

2018.03.12 23:58

류호준 조회 수:571

“집으로.....”

 

내 어렸을 적이니 6.25전쟁이 끝난 지 몇 해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전쟁의 상흔들은 아직도 나라 곳곳에 남아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골에선 종종 터지지 않은 폭탄들이 발견되었고, 동네 구석진 밭에서도 총알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 때만해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들이 거리에 많이 보였던 시기였기에 어린 우리들은 종종 비포장도로를 먼지 휘날리며 달리는 미군차를 죽어라 따라가며 배기통에서 나오는 휘발유 냄새를 맡는 쾌감을 느끼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간혹 미군들이 던져주는 껌이나 초콜릿을 서로 받겠다고 아우성치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제 보니 프레쉬민트와 같은 껌이나 스니커와 같은 캔디였나 봅니다.

 

마땅히 놀만한 것들이 없었던 그 시절,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린아이의 매일의 고민이기도 했습니다. 궁핍이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어려도 창의성을 발휘해 장난감도 직접 제작하거나 스스로 조달해서 놀았습니다. 이젠 추억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딱지치기, 사방치기, 구슬치기, 땅 따먹기, 고무줄놀이, 팽이치기, 공기놀이, 편 갈라 전쟁놀이하기, 총싸움하기, 썰매 만들기, 작대기 자치기, 벽에 기대어 말 등 올라타기 등 말입니다.

 

한겨울에도 동네 골목길로 출근하면 친구(동무)들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습니다. 딱딱한 양회포대로 특수 제작한 딱지로 친구의 딱지를 몽땅 다 따먹었을 때의 성취감은 하늘을 얻는 기분이었지요. 배치기는 기본이었고, 상대방 딱지의 모서리를 휘갈겨 뒤집기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추운 바람에 손등은 갈라져 터졌고 피가 고이기도 했습니다. 바셀린을 바르면 감쪽같이 낫기도 했지요. 그래도 만선의 어부처럼 봉지에 가득채운 딱지를 보며 뿌듯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한참 물이 올라 신나게 놀이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골목길 저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입니다. “호준아, 저녁 먹을 시간이야. 이제 집에 들어와야지?” 사실 그 땐 그 소리가 제일 싫었습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지만 노는 재미를 막아서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아들아,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와야지? 밥 먹을 시간이야!” 두세 번 소리에 비로소 놀던 모든 것들을 멈추고 어둠을 가로질러 골목길 저편으로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집, 가정, 가족, 동생들과 엄마와 아빠, 집에 들어가는 일, 집으로 들어오라는 부름, 저녁상을 차려놓았으니 집에 들어와 밥을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저 뭉클하고 눈물어린 추억의 장면입니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같이 놀던 친구들도 하나씩 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저만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비록 호롱불이지만 따스하고 온화하게 느껴지는 집안의 정경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연탄불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밥상에 올린 꽁치의 가시를 발라주던 엄마의 손길이 바깥 겨울 추위를 단숨에 녹입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앞으로 언젠가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오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아, 이제 집으로 들어올 시간이야. 너를 위해 저녁 만찬이 준비되어 있단다.” 지상에서 놀이하던 그의 자녀들을 향하여 부르는 하늘 아버지께서 소리 말입니다. “애들아, 이제 날이 어둑해졌구나, 그만 놀고 집으로 와야지? 너희를 위해 풍성한 만찬이 준비되었단다.”라고 말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가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일 겁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들아, 어서 들어와” “집으로 어서 와, 우리 딸아!” come home! come home!

 

그 때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예, 준비되었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앞으로 어느 날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 풍선 집으로 타고 가겠습니다. 조그만 더 있다가 가면 안될까요? ㅎㅎㅎ”

 

*****

 

아래 찬송을 조용히 읊조려보시기 바랍니다.(481장)

 

      어두운 밤, 가득히 내리고

      가야할 길은 보이지 않네.

      두려운 마음, 내손 내미니,

       나와 함께 하소서, 평화를

 

      내 사는 날이 속히 지나고
      이 세상 영광 빨리 지나네
      이 천지 만물 모두 변하나
      변찮는 주여 함께 하소서

 

      임유진이 부르는 찬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w6bZ1_dlW4

 

영화 UP의 풍선집

up balloons hous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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