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시 130장("깊음에서")

2014.03.21 23:13

류호준 조회 수:10391 추천:1

시편 130

심연(深淵)에서” (De Profundis)

 

 

I        야웨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습니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II     야웨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신다면,

               주여 누가 감히 설 수 있겠나이까?

       그러나 용서하심(赦宥)이 주께 있으니,

               이는 주를 경외케 하심입니다.

 

III  나 곧 내 영혼이 야웨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약속)을 바랍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합니다.

 

IV   이스라엘아 야웨를 바랄지어다.

              야웨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그가 이스라엘을 구속하실 것이니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실 것이로다.

 

 

시편 130장은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입니다. 서구에선 이 시를 De Profundis 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시 130장의 첫 문구인 깊음들(심연, 深淵)”에 대한 라틴어입니다. 이 시는 일명 순례자의 시 모음집”(120-134)에 속해 있는데, 내용상 참회의 시로 분류됩니다.

 

죄에 대한 깊은 인식과 인간본성에 대한 치열한 성찰로부터 시인은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죄인인지를 절감하면서, 인간 존재의 깊고 무시무시한 물속에서 하늘을 향해 절박하게 부르짖습니다. 진정성 있는 회개와 재를 뒤집어쓰는 참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죄의 짓누르는 중압감이 얼마나 무거운지, 죄 속에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비참한지, 시인은 오로지 하늘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죄의 용서하심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천주교 서클에서는 이 시를 죽은 자를 위한 예식에 사용하곤 합니다. 1절의 깊음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있는 연옥(煉獄, purgatory)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특정한 교리(연옥교리)를 본문에 집어넣고 다시 그 교리를 증명하려는 애씀에 불과합니다. 시인은 여기서 깊음들을 시적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시인은 죄의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마치 태고의 심연(深淵) 속에 빠져 도무지 살아나올 수 없는 비참한 상태로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오 야웨여,, 당신께서 사람들의 불의들을 기록(감찰)하신다면 누가 감히 당신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라는 구절을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최후의 재판정에 서게 되는 것으로 연결 지으려는 것 역시 무리한 시도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일은 정말로 소름끼치고 두려운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그분의 정의로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저 유명한 설교문인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이 떠오릅니다. 즉 최후의 심판이 가져오는 무시무시한 중압감 때문에, 죄 지은 영혼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긍휼에 기대지 않고서는 영원한 고뇌와 두려운 번민의 고통을 겪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유하심과 은혜가 주어지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 무섭고 괴로운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는 몇몇 천주교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오로지 최후의 심판대에서 일어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합니다. 시인이 지금 자신의 깊은 죄와 죄의 본성을 영적 심연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이 시는 무서운 죄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영적 심연에 빠져 있는 모습에 비견하면서 거기서부터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외롭고 불쌍한 한 기도자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예기치 못한 은혜와 죄의 용서의 선언과 긍휼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구원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다른 몇몇 시들(32, 51, 130, 143)과 더불어 이 시를 매우 바울적인 시편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루터가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강조했을 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뿌리가 깊은지, 그래서 사람이 아무리 그 죄성을 없애려고 온갖 인간적 노력을 다한다 하더라고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루터로서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루터는 이런 시편들에 반영된 인간성의 전적 부패와 인간존재의 깊은 죄성(罪性, sinful nature)에 대한 이해가 매우 바울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직면하는 일을 언제나 부정하고 더럽고 죄스런 본성으로 가득한 모든 피조물들이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심판주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유하심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는 심연 속에 파선하여 익사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구원의 손길은 위로부터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는 그분의 신실한 사랑에서만 시작되는 선물입니다. 그분의 용서하심과 자기에게로 우리를 받아들이는 그분의 용납(容納)하심이 있을 때만 온전한 구속(救贖)”(full redemption)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을 그분에게 두십시오(7).

 

참조, 찬송 363

 

[아래는 미국 유타주의 모압 사막입니다]

 

유타주의 모압사막.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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