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1 16:13
Twitter(@danielryou)에 올렸던 짧은 글들
[1] "우회도로"(detour) = 가다가 길이 막히면 돌아갑니다. 삶의 여정에는 detour 안내판 없이 꼬불꼬불 돌아서 가야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낭비된 시간은 아닐 것입니다. 당신은 예기치 못한 전경(前景)에 경탄할지도 모릅니다.
[2]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우리 자신에 대해, 창조된 세상에 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3] 크리스천의 믿음은 풍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풍랑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은 풍랑이 아니라 풍랑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칩니다.(막 4:40)
[4]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문제를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5] 믿음이란 스노우 체인(snow chain)을 준비해 둔 어떤 사람과 같으니 그는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느니라.
[6] 십자가 - 양손을 내린 채로 링위에 올라간 권투 선수와 같다.
[7] 주류 지혜 전통(잠언)과 비주류 지혜 전통(전도서) 중에서 비주류가 더욱 내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언은 대낮, 전도서는 황혼녘, 욥기는 흑야와 같다.
[8] 하늘의 별들을 잊고 산지 꽤 오래 되시지는 않았나요? 오늘 따라 별들이 유달리 빛납니다. 하나님은 매일 밤마다 하늘에 별들을 걸어놓으십니다. (사 40:26; 시 8:3)
[9] 사막에서 주려 죽게 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까마귀들을 보내어 양식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잘 먹고 정신을 차린 후에 엘리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왕이면 입이 엄청나게 큰 까마귀들을 보내주세요!" 이게 우리의 기도들은 아닌지?
[10] 겸손과 온유: 예수님은 오로지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약한 자의 온유나 무력한 자의 겸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비굴이었고 비참이었습니다.
[11] 광복절과 유월절의 공통점: "어두움에서 빛으로" "폭정에서 자유로" "억압에서 해방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골 1:12-13)
[12] 예배란 그분의 발 앞으로 의자를 바싹 끌어당겨 앉아 턱을 고이고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13] 우리 속에는 항상 두 라이벌이 끊임없이 다툽니다. "브닌나와 한나" "레아와 라헬" "사라와 하갈" "미갈과 밧세바" 등등 ... 오호라, 두 여자를 데리고 살기가 만만치 않네! 언제나 가정에 평화(샬롬)가 오려나!
[14] 우리가 무엇을 예배하느냐, 어떻게 예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들과 성격들과 신념들이 형성되고 만들어집니다. 누군가 잘 표현했듯이, "기도 하는 행동을 통해서 믿음이 만들어지고 조형됩니다."(Praying shapes Believing).
[15] 예배란 하나님의 무게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놀랍게도 현대 교회의 예배에서 하나님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16] 신앙이 생명의 운동성을 상실하게 되면, 교회 안에는 조직원이 된 크리스천들, 화석화가 된 기독교인들, 종교적 기능인이 된 기독교인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17] 하나님의 악보에 대한 절대음감(絶對音感])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장조(major key)의 때와 단조(minor key)의 때를 구별하고 그에 맞춰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제대로 노래할 줄 모르는 것 같다.
[18] 이 세상에서의 크리스천의 삶은 마치 진흙탕 길을 걷는 어떤 사람과 같다. 문제는 옷을 더럽히지 않고 걸을 수 있을까? 이것이 고민스런 질문이다.(롬 12:2)
[19] "Lord, help us to end well." - Bishop William Culbertson (dean of Moody Bible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