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2 13:39
“언제까지 우리가 비틀거려야 했습니까?”
“야웨의 말씀들을 구하려고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비틀거리고 다니며 북에서 동까지 헤매고 다녀보지만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 암 8:12절
여기에 사용된 두 개의 동사(‘흔들리다’, ‘떨다’, ‘진동하다’; ‘헤매다’, ‘배회하다’)는 술 취한 사람이나 소경이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일이 있습니다.
술 취한 자가 방향감각을 읽어버리고 비틀거리거나, 장님이 앞을 보지 못하여 넘어지거나 아니면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道)이 없으면 삶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道)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방황하고 무익하게 헤매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본 절(12절)은 이중적 의미(double entendre)를 통하여 삶의 허무와 방황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설령 그들이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간신히 바다 에 도달하였더라도 그들의 ‘목마름’을 해갈할 수 없게 됩니다.
물에 도달하여서도 목마름을 해갈할 수 없다니! 왜 사람들은 비틀거리고 방황한단 말입니까! 삶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우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국 뛸수록 배고픔과 목마름은 더해 갈 것입니다. 마치 탄탈로스(Tantalus)의 영원한 목마름처럼 말입니다. 사르밧 과부와(왕상 17:1-16) 수가성(城) 여인이 그랬고(요 4:1-15), 막달라 마리아가 그랬고(눅 7:36-50)
우리가 그렇지 않았던가요? 언제까지 그래야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도착하기 전까지, 즉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우리의 삶속에 오시기 전까지, 아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하시던 그분이 그들과 우리를 포옹하시기 전까지 그렇지 않았습니까?
- 류호준, 「시온에서 사자가 부르짖을 때」중에서
[조카 대현이 아내가 직접 찍은 사진, Crater Lake in Ore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