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신앙 에세이: "다섯 손가락"

2010.01.12 05:23

류호준 조회 수:7210

 다섯 손가락


교회가 이 지상에 태어난 후로 한 번도 완전하거나 완벽해 본 적은 없습니다. 언제나 부끄러움과 더러움을 묻히고 살아왔습니다. 한번이라도 순결하고 깨끗해 본 일이 있느냐고 자문한다면 대답은 언제나 ‘글쎄요’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때는 하나님의 열정보다 더 열심이 지나쳐 수많은 영혼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무지하여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였지만 그것이 얼마나 불경한 일이었는지 조차 모르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는 한없이 나태하고 게을러 영혼의 무저갱(無坑, bottomless pit)으로 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때는 상대방에게 무차별적 펀치들을 날리며 집안끼리 싸움하느라 얼굴들이 퉁퉁 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교회의 얼굴은 가관입니다. 여기저기 상처에 붙인 반창고(絆創膏) 투성이입니다. 언제 편안할 날이 있었는지요?


어떤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좋았던 옛날’(good old days)을 그리워하며 “아, 옛날이여!”라고 노래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날들이 있었던가? 물론 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는 사람들 모두가 무엇이든지 공유하면서, 멋진 화합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들 자신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지 팔아 공동 자원으로 이용하면서, 각 사람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집에서 식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들의 하루 일과였습니다. 식사 때마다 즐거움이 넘쳐흐르는 축제였습니다.”(행전 2:45-47)


와우, 정말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동경할 만한 광경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니 그런 모습이 더욱 그립습니다. 초라하기 그지없던 그 시절이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누렸나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여기저기 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별의 별 교회들이 나타났습니다. 교인들 간의 한심한 다툼들과 옛적 못된 습관들이 불쑥불쑥 화산처럼 터짐으로 교회 공동체는 초토화되거나 엉망진창이 되곤 하였습니다. 아마 이런 추한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 교회가 고린도에 있던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서를 읽다보면 우리가 지금 교회를 보고 있는 것인지 타락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그곳엔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그렇게 잘난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회에 들어오기만 하면 서로가 잘났다고 으르렁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참 꼴불견입니다. 파벌 싸움이 심해졌고 도덕이 무너졌고, 예배는 초자연적인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신앙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옛적 습성들을 세례의 물속에 수장시켜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역시 첫 사람 아담에게 속한 후손들은 탁월한 수영선수(mighty swimmer)인가 봅니다. 절대로 익사(溺死)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속에 잡아 처넣어 그토록 물 먹이시려 하셨지만 번번이 실패하십니다. 우리는 그토록 물속에 빠져 죽지 않는 훌륭한 수영선수들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도 감당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피조물들입니다.


이런 풍경은 그저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각 지역 교회를 둘러보면 거의 틀림없이 동일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교회에 나왔다고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 같은 장로나 집사라 하더라고 수석이니 선임이니 하면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 생활정도나 취향이나 학벌들이 같은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 서로를 찬양하고 서로를 받들어 올리는 사람들, 어떤 경우에는 집단적 행위도 불사할 정도로 인간적 의리로 뭉쳐진 조폭 같은 사람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열심을 내면 그 꼴을 못 보는 속 좁은 먼저 온 사람들, 설교에 관하여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만을 골라 먹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자기 취향이 아니거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언제라도 음식을 내뱉어 버리는 사람들, 언제나 위로받고 사랑받기만 하려는 철부지 고참 교인들, 궂은일은 가급적 멀리하고 입으로 한 몫 하는 사람들,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된장녀 같은 사람들. 이것이 교회의 현실적 모습일 것입니다. 여기서 제외되는 지상교회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체념 때문이 아니라 성경이 지상교회에 대해 보여주는 우리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일그러진 군상(群像)들이 모여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룬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이며 알다가도 모를 비밀입니다.


얼마 전 저녁에 어떤 신실한 크리스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경건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지상교회의 모습에 대해 의아해하며 외롭게 하나님께 질문하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미 중서부의 조용하지만 추운 겨울 도로를 달리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나님, 교회가 뭐에요?, 왜 이 모양 이 꼴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밑도 끝도 없이 “너 손가락이 몇 개지?”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 교회와 손가락이 무슨 관계일까 하며 그녀는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다섯 개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다섯 손가락이 뉘 것이니? 네 것이지? 한번 물어봐? 아프지 않니?” “그건 사실이지만 너무 식상한 교훈이네요!” “아냐, 지상교회는 나의 다섯 손가락과 같단다.”


차 안에서 하나님과의 대화는 얼마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떠나셨습니다. 잠시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도로 옆에 차를 세워놓고 손가락 다섯을 다시금 쳐다보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쳐다보는 제 손가락 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각 손가락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 엄지(무지[拇指]), 언제나 위로 치켜세우면서 “이래봬도 내가 최고지!” 하던 그 엄지손가락입니다.

   ․ 검지(인지[人指] = 집게손가락), 언제나 빈정대는 투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던 그 둘째손가락입니다.

   ․ 중지(中指), 가운뎃 손가락을 올려 세우면서 욕지거리를 마다하지 않던 못된 긴 손가락입니다.

   ․ 약지(藥指), 천천히 약을 저을 때 사용하는 손가락입니다. 가장 힘이 없는 손가락입니다. 피아노를 칠 때 악보 따라가기에

     힘에 부쳐 뒤처지는 약한 손가락입니다. 별 볼일 없는 손가락이라 하여 무명지(無名指)라고도 합니다.

   ․ 소지(小指), 새끼손가락이라고 얕잡아보지만 가려운 귀를 후빌 때 가장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넷째 손가락을 빼놓고는 하나같이 못돼 먹은 놈들입니다. 은근히 자만하고 남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이 손가락질하고, 때론 더러운 욕설을 퍼붓고, 날카롭게 후벼 파는 일에는 다들 한 몫을 하는 지체들입니다. 그런데 넷째 손가락은 가장 초라하고 힘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순간적으로 제 머릿속을 스쳐가자마자 저는 달리던 차를 도로 옆에 멈춰 세워두고 하늘을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약지 손가락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무명지라고 하셨지요? 그래요. 저는 이름도 없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제가 말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저는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네요. 사랑하는 사람이 끼워준 반지 말입니다.”


자그마한 키에 언제나 미소를 짓는 이 부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녀는 간호사 출신으로 미국에 이민 오신지 어연 40년이 넘어가는 권사님입니다. 몇 년 후에는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 부인을 알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30년 전이었습니다. 유학생활하면서 만난 분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역시 성실하고 헌신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손재간이 많아 교회당의 수리해야 할 궂은일들은 언제나 그분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소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교회의 장로로 선출이 되어 장로임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에게 교단의 문양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반지를 선물하였습니다. 혼자 받는 것이 쑥스러웠던 그 남편은 아내를 위해 기대치 않았던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20년 이상 온갖 고생스런 이민 생활에 말없이 따라준 영혼의 동반자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반지를 준비해 아내의 넷째 손가락에 끼워주었습니다.

 

남편을 사별한지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녀는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그 반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온 몸이 전율하였습니다. 조용히 흐느끼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사랑했던 그 사람의 증표가 끼워져 있는 약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 약지는 결코 무명지(無名指)가 아니에요.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반지를 소유하고 있잖아요. 저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래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저는 그 어느 것도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어요!” 그녀는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흐르는 눈물 안에 식탁위로 내려진 백열전구의 빛에 반사되어 생긴 아롱진 무지개가 떠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그날 저녁 그녀와 함께 은혜의 함박 눈길을 걸었습니다. 눈 쌓인 미시간의 추운 겨울 신작로에는 발자국이 가지런했습니다.


“교회가 뭐에요?” “응, 지상 교회는 다섯 손가락과 같아!”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가 더욱 세차게 귓가에 내려치는 조용한 겨울 저녁 식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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