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일상에세이: "IHOP 유감"

2010.01.01 03:13

류호준 조회 수:7984

 “IHOP(아이합) 유감”


류호준 목사

 


요즘엔 단체나 학교 혹은 기업이나 모임의 이름을 약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약어가 서로 겹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의 경우 BU라고 하면 미국에서는 동부의 Boston University도 있지만 서남부의 Baylor University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백석대학교 역시 약칭으로 BU를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모두 동문일 수는 없겠지요. '종(種)의 기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중남부 캔자스 시에 대규모 연례 신학 학술대회 및 정기 학회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녁에는 영성집회도 열렸습니다. 굉장히 많은 수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참가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저명한 학자들의 논문 발표와 아울러 불을 토하는 듯한 탁월한 설교들의 향연이었습니다. 이런 대규모 학회에는 학자들이나 목회자들 뿐 아니라 유수한 기독교 출판사 관계자들도 많이 참가합니다. 그들에게는 출판한 서적들을 알리기도 하고 좋은 집필자들을 물색하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신진 학자들의 경우도 그들이 연구한 것을 책으로 출판하려면 출판사 담당자들을 만나야하는데 이런 장소보다 더 좋은 기회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피터라는 이름의 젊은 학자는 그날 오후에 있던 분과별 학회를 마친 후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담소를 하느라 좀 늦은 시간에 저녁식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는 뷔페식으로 식사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미 학회에서 공지한 대형 홀에는 사람들로 가득 붐볐으며 식사는 거의 마쳐가는 상태였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음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행사 담당자들이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식사가 끝이 났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로 약 10분 정도 가시면 IHOP이 있으니 그것으로 가라는 친절한 안내를 잊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피터라는 사람이 이야기하고자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건 그는 위의 이야기를 그가 최근에 출판한 어떤 책의 서문에 재미있는 일화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이런 내용과 함께 피터의 책을 한글로 변역하게 된 어떤 한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역시 미국에서 약 2년간 공부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약간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자기가 전공한 학문 분야는 잘 알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일상생활을 경험한 것은 전무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유학한 나라에서 여러 해를 살아도 실제로 그 나라의 문화를 접촉하거나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과 연구실 혹은 도서관에서 보내고, 혹시라도 방학 같은 시간이 있어도 주로 가족이나 동료 한국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 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결혼한 유학생의 경우는 강의 시간을 빼고 나면 언제나 한국사람(아내나 자녀!)과 지내게 됩니다.


어쨌건 그는 위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위의 문장 중 IHOP이란 약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약어의 정식명칭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그에게는 옛날과는 달리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가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즈음 시대는 구글(Google)에 문의하면 웬만한 것은 다 알아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글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구굴은 친절하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을 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 확률은 50대 50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는 어려서부터 우리에게 넷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가르쳐오지 않았는가? 사지선다(四枝選多)형 문제 말입니다. 넷 중에서 가장 적당한 항을 찍으라고 가르쳐왔는데 지금 그 앞에 놓인 문제는 이지선다형(二枝選多)이니 얼마나 행운인가! 정답을 맞힐 확률이 사지선다형보다는 훨씬 높은 것입니다! ‘맞춘다!’고 하는 것보다는 ‘찍는다!’고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대학입시 때가 되면 모형 도끼를 수험생 친구에게 선물로 주겠습니까? 잘 찍으라고! 


자, 구글(Google)이 그에게 준 두 가지 옵션은 (1) IHOP = International House of Pancakes, (2) IHOP =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였습니다. 전자는 미국의 유명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이름이고 후자는 캔자스 시에 위치한 유명한 국제선교 단체(국제기도연맹)에 이름이었습니다.


자, 여러분이라면 어느 쪽을 찍겠습니까? 도끼까지는 필요 없겠지요? 캔자스 시에서 열린 연차 신학자 학술대회에서 식사를 못한 피터에게 행사 진행자들이 친절하게 소개한 IHOP는 식당 이름일까 아니면 국제기도연맹일까요? 위의 내용을 한글로 번역하던 그 분은 고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것이 맞을까? 그는 결국 후자를 선택하였습니다. “맞아, 식사를 못했던 피터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어? 경건한 신학자 피터 씨가 아닌가? 그는 분명 국제기도연맹본부로 돌아가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었을 것이야. 조금 후에 있을 저녁 영성집회에 참석하려면 먼저 기도로 준비해야하는 것 아니야? 맞아,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안 그런가?” 이 번역자는 나름대로 경건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이런 번역 결정을 하면서 그는 스스로 은혜를 많이 받았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은혜를 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해를 끼치지 않는 잘못”이라는 것이 이것을 두고 말하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후에 나는 그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출판사에 알려주었고, 출판사의 담당자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번역의 오류를 잡아 주었습니다.


오늘이 2009년 12월 31일 이른 아침이다. 어제 저녁에 아내가 나에게 IHOP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수없이 지나쳤지만 그곳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한번 가보자는 제안이었다. 나는 이상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러자고 약속 했다. 설국(雪國)이 되어버린 미시간의 이른 아침의 안개를 뚫고 우리는 IHOP으로 차를 몰았다. IHOP 간판이 멀리서 보였다. 물론 그 밑에는 International House of Pancakes이란 명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추운 겨울의 따스함을 얻고자 나이든 부부들, 화목한 가족식구들이 삼사오오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신선하다. 웨이터가 건네 준 커피향이 코끝을 진하게 자극한다. 삼 층짜리 팬케이크 위에 캐나다산 단풍시럽(Maple syrup)으로 풍성하게 세례를 주었다. 아니지, 침례를 주었지! 창문밖에는 이런 광고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Open 24 Hours, 7 Days a Week"


허허, 참! 와우! 나는 하늘을 우러러 다시금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아내는 내가 왜 빙그레 웃고 있는지를 잘 몰랐지만 말이다.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맞아, 하루 24시간 내내 여는 곳, 일주일 내내 여는 곳, 하루도 쉬지 않고 여는 곳!” 이곳이 IHOP이란다! 어떤 IHOP?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교회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내가 기도를 쉬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던 선지자 사무엘의 목소리가 이 이른 아침에 새삼스럽게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 성막 안에서 촛불을 끄지 않도록 한 이유가 이것이 아니었던가?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이 '기도의 집'이 되기를 바라시지 않았던가?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도 IHOP를 개설하여 '기도의 등불'을 걸어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2009년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이 가는 이른 아침이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이유이다.


[2009년 12월 31일, 한 겨울 미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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