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의인의 자손은 걸식(乞食)하지 않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시골 버스운전사로 사시다가 시골 버스운전사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42살이란 이른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서 어린 나는 하나님께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 그럴 수 있습니까?”라고 대들기는 했지만 선친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크리스천이다. 그의 아들인 나는 현직 목사이며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러나 그분은 비정규직 버스 운전사였고 교회에선 서리 집사님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크리스천들 가운데서 가장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무엇이 신실한 크리스천의 조건이며 자격일까? 신실한 크리스천이란 어떤 크리스천을 말하는 것일까? 신실한 크리스천의 특성은 무엇일까? 아버지께서 어린 네 자녀들에게 유산처럼 남기신 것은 가정예배와 성경읽기였다. 1960년대 이른 아침 나는 당시 서울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지만 아버지는 나를 포함해 어린 자녀 네 명을 모두 일으켜 가정예배를 드렸다. 적지 않게 고달프고 싫었다. 방과 떨어져 있는 부엌에는 연탄불에 올려놓은 아침 밥 짓는 냄새가 방문 틈으로 진동하고 자칫 잘못하면 밥이 탈 지경이었지만 방 안에선 예배가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초초한 마음으로 언제 예배가 끝날까 하고 기다렸지만 돌아가면서 읽는 성경봉독은 계속되었다. 마치 끝도 없이 돌고 도는 회전목마처럼 우리 식구 6명이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예배에 참석해야하는 어린 우리 자녀들의 다리는 점점 절여왔다. 그래도 성경읽기는 계속되었다. 성경읽기가 끝이 난 다음에는 평신도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설교의 끝 부분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낭독하셨다. 아니 낭독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자녀들을 위한 유언적 고백과 같은 구절이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 25)

 

물론 그 구절이 어디 있었는지 당시는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가정적으로 식구 모두가 광야적 삶에 내 몰려 살게 된 이후로부터 그 말씀은 내 머리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참 후에 그 구절이 어디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그 구절을 ‘찾는’ 일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구절을 ‘발견’하였다. 발견의 기쁨이라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기쁠 수가! 그 말씀은 약속이었으며 희망이었다. 넉넉지 못한 가정생활과 고단한 광야적 삶에서도 그 말씀은 하늘의 약속이었으며 나의 지친 발걸음을 지탱해주는 힘이었으며 앞이 막막한 가운데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희망의 광선이었다. 맞아!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는 사람, 밝을 때든지 어둘 때든지 성공할 때든지 실패할 때든지 가난할 때든지 부요할 때든지 건강할 때든지 병들었을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 삼아 걷는 사람의 자녀들은 결코 굶주리지 않는다는 약속의 말씀이 나로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광야에서 매일 같이 일용할 양식을 하늘에서 내려주셨던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을 삶을 통해 배우게 한 것이다.

 

이런 경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정규적으로 먹는 일이 신앙의 여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주었다. 솔직히 나는 큐티(QT)라는 것이 뭔지 몰랐다. 때는 1980년 초 미국 유학 중에서 같이 공부하던 송인규 교수(현, 합동신학대학원)가 큐틴가 뭔가 하는 말을 지나가면서 여러 번하긴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몰랐다. 창피하기는 했지만 용기를 내어 그에게 물어보니 Quiet Time의 약칭이란다. “으음, 조용한 시간이군!” 이것이 내가 처음 큐티라는 것을 알게 된 첫 경험이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어린 시절부터 큐티를 한 셈이었고 큐티가 나로 힘든 광야 여정에서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게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큐티 이전에 이미 큐티와 함께 존재했었노라!

 

나에게는 큐티 하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먼저 그 시간은 내가 본문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아니라 본문을 듣는 시간이다. 달리 말해 본문이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귀담아들으려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큐티가 추구하는 ‘조용함’이란 무엇일까? 조용한 시간이란 어떤 상태일까?

 

빈 방은 조용하다. 사람들이 말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방은 조용하다. 침묵은 얻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침묵은 조용한 선물이다. 침묵은 여러 무의미한 소리가 없는 상태이며 그것들이 멈춘 적막의 상태다. 침묵은 조용할 수밖에 없다. 조용함은 소리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침묵은 무엇인가를 듣기 위해 숨을 멈춘다. 침묵은 기다린다. 침묵은 적막(寂寞)이다.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돌이키고 조용히 있으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너희가 힘을 얻을 것이다.”(사 30:15)라고 하셨다. 풀어서 말하자면, “집으로 돌아오라. 잠잠히 조용히 있으라. 침묵하라.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마라. 고요한 중에 얻는 확신을 갖고 그분을 신뢰하라. 그러면 존재의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힘과 쉼을 얻게 될 것이고, 바로 그것이 구원 얻었다는 상태이다.” 우리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뒤로 하고 조용히 돌아와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비로소 참된 힘과 안식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한 이 세상의 끝이 닿지 않는 저 너머에 어지럽혀지거나 방해받지 않은 채로 있는 고요함과 안식이다. 이것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인지를 우리에게 조용히 들려준다. 이것이 참된 큐티다! 매일 정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그러면 충분히 하루 여정을 넉넉하게 걸어갈 수 있다.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약속이 앞으로 남은 인생여정도 넉넉하게 견디고 걸어갈 수 있도록 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호와의 가르침을 주야로 읊조리는 사람이 진짜로 행복한 사람입니다.”(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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