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스승 차영배 박사님을 추모하면서”

 

 

[1] 엊그제 9월 2일 월요일에 차영배 교수님(車榮倍, 1929년 2월 4일 ~ 2018년 9월 2일)이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90세의 수(壽)를 누리시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1929년생이시니 우리 어머니하고 동갑이시다. 고신 출신의 차 박사님은 네덜란드 깜뻔신학교(해방파)에서 6년간 공부하시고 “독트란두스”(Doctorandus. 줄여서 Drs.) 학위를 취득하셨다. “독트란두스”(라틴어)는 네덜란드에만 있는 학위인데 그 뜻은 “박사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독트란두스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총신대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치시고 총장까지 역임하셨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개혁신학자인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를 열정적으로 소개하셨던 이유로 그의 제자들은 차영배 교수님께 “차빙크”라는 별명을 붙어주기까지 했다. 나도 총신 신대원에서 차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에 한명인 동시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이유 때문에 차 교수님의 소천이 더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어제 평촌 한림대 영안실을 찾았다. 사위  최홍석교수(총신대신대원 은퇴)와 아들 차재승교수(미국 뉴브른즈윅 신학교)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2] 차 교수님은 교실에선 언제나 눈을 지그시 감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질러가면서 열정적으로 강의했다. 교실이 진동하다시피 했다. 눈을 감고 강의를 하다가 슬그머니 눈을 뜨고 학생들을 쳐다보곤 했는데, 가끔 말이 꼬이거나 엇물리면 멋쩍은 듯 눈을 살며시 뜨고 미소를 지었다. 살인적 미소였다. 때론 어색하기 그지없는 화통한 웃음이었다. 그 때의 추억을 소환하자니 마음의 짠해진다. 더 이상 그분이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3] 총신신대원(1976년도 1학기로 기억)에서 나는 차 교수님으로부터 두 과목을 배웠다. 하나는 성경해석학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론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신론에서 삼위일체론을 가르칠 때였다. 삼신론(Tritheism)이나 단일신론(monarchianism)의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는 목에 핏줄이 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히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쉽게 빠지는 양태론(modalism)적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는 가히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어간 듯 보였다. 그 정도로 차 교수님은 올바른 삼위일체 이해를 강조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4] 삼위일체론을 설명할 때 차 교수님은 종종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인용하여 영문법을 강의하기도 했다. 신앙고백서 제2장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성삼위일체에 대해서 고백하는 장인데, 2장 3항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In the unity of the Godhead there be three Persons of one substance, power, and eternity: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 이 문장을 칠판에 적으시고, “자, 똑바로 보세요. 이 문장이 어떠한지를” 그리고는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면 결코 양태론자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삼신론자도 될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들어 있는 삼위일체에 관한 문장은 그 뜻과 의미에 있어서 분명하고 명확하다. 번역하자면 이렇다. “신성(神性)의 통일성을 이루면서, 동일한 하나의 본질, 동일한 하나의 능력, 동일한 하나의 영원성을 소유한 세 분들이 있으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5] 이상과 같은 삼위일체 이해가 한국 신학계에 널리 통용 확산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차 교수님은 혹시 외국에 학자 가운데 자기에 지원군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지를 찾아보다가 미국 캘빈 신학교의 조직신학교수인 코넬리우스 플랜팅가(Cornelius Plantinga) 박사가 개혁파 신학에서 삼위일체론에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1983년도 당시 캘빈 신학교에 공부하던 나와 고 이정석 교수를 통해서 플란팅가의 박사 학위 논문까지 복사해서 전달받으셨다. 당시 플란팅가 박사는 소위 “사회적 삼위일체론”(Social trinitarianism)로 알려진 삼위일체 해석방법을 성경적으로(특별히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조직신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새로운 목소리의 일원이었다. 차 교수님이 나중에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접하고 동의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통적 삼위일체론(“동일한 본성을 가진 세 분”)을 재천명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려 애를 썼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삼위일체론의 함의를 좀 더 확대하셨더라면(예, 교회론, 기독교 윤리 등)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 당대에 삼위일체론에 대해 강력히 강조하였다는 것은 한국 신학계에 큰 공헌이 아닐 수 없다.

 

[6] 한 세대는 가고 다른 한 세대가 온다. 세대 간의 단절이 아니라 이음을 통해 신학적 유산들이 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차 교수님이 남긴 여러 신학적 과제들(삼위일체론, 성령론 등)을 그 후학들이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이바지해야 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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