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박사학위를 했어도…”

 

학위 인플레이션 현상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신학교들도 최근 10여년 사이에 너도나도 다양한 박사학위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성서학에서부터 상담학에 이르기까지, 교의학에서부터 사회복지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박사학위과정을 개설하고 학생들을 유치합니다. 그러나 학위를 마친 학생들이 마땅히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학교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교들은 가급적 풀타임 교수직을 줄이고 대부분 연봉제 강사나 시간 강사로 때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누가 한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대학의 조직과 행정의 문제이기에 여기선 이에 대해 할 말은 많지만 잠시 멈추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소지한 – 앞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신참 학자들을 포함하여 -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현실을 목도하면서 개인적으로 비애를 금치 못합니다.

 

아시다시피 국내든 외국에서든 최소한 4년 이상 때론 7~8년에서 10년 이상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은행대출은 기본이고, 공부하는 중엔 배우자가 생계를 꾸리느라 여간 고생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위를 마친 후에 그들을 위한 “일터”는 너무도 좁습니다. 아니 때론 “조직적으로” 좁게 만들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일주일에 한 과목 정도 가르치고 받는 돈이 30여 만 원 정도, 이것도 방학에는 일체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연구”는 학위를 마친 후에는 “끝~~”입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뭔 연구라는 말입니까? 이들에겐 도서관이나 개인 서재에서 불을 밝히며 연구하는 모습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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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슬픈 이야기들이 많이 들려옵니다.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들 가운데 67%가 계약직 시간강사들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학기마다 재계약의 험산준령을 넘어야 하고 건강보험 혜택은 물론 없고, 일 년에 다섯 과목을 가르치고 받는 연봉이 고작 1,000만 원 정도 약간 상회하는 수준,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이니 미국에서 이건 거의 빈곤 수준입니다. 이게 미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Ph.D = Permanent Head Damage (평생 뇌손상 장애인)이니 Pizza Hut Delivery(피자 배달원)이니 라고 자조 섞인 말이 생겨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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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약신학계에서도 잘 알려진 피트 엔즈(Pete Enns, Ph.D. Harvard)가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내 친구 중 한명이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습니다. 여기저기 일할 곳을 찾다가 그가 몇 년 전에 졸업한 신학교에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직장을 얻게 된 바로 그때에 그 신학교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관리인 한명을 채용했는데 그가 받는 월급이 자기가 받는 월급보다 꽤나 높았습니다.

 

그래서 학과장이 학교 총장을 만나 명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한 교수가 어떻게 청소담당 관리직 직원보다 훨씬 적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느냐, 그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총장이 선뜻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요? 그 가격이면 어디서든지 쉽게 교수들을 구할 수 있어요. 그러나 관리직은 그 정도의 연봉으로는 결코 구할 수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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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년 이상 한국의 신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동안 최소한 십여 명 이상의 제자들이 국내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러나 박사학위를 얻었지만 “일터”를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이런 슬픈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비애감만 더해집니다. 아무래도 나라도 빨리 은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봤자 무슨 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한 자리”가 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자리를 메꿀 사람 역시 “한 사람” 밖에 없다는 것이 슬픔이지요.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끼리 경쟁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게다가 공부할 능력이나 최소한의 준비가 결여된 사람들을 무작정 박사과정에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로 윤리적인가 하는 고민도 가져봅니다. 시름만 깊어지고 뾰족한 대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이만 멈추어 봅니다.

 

아무래도 코헬렛(전도자)의 조언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마디만 더 하마. 애들아, 조심하여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단다.”(전도서 12:12)

 

                   “Of making many books there is no end,

                     and much study wearies the body.”(Eccl. 12:12)

 

[가르칠 기회를 주세요. 먹고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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