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잃어버린 세월” 유감

2014.06.07 11:54

류호준 조회 수:7627

잃어버린 세월유감


 

 

최근 미국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김세윤 교수가 뉴스앤조이(News&Joy)라는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서 나 개인적으로도 만감(萬感)이 교차함을 금할 수 없다. 인터뷰 기사는 한국에서 신학자와 교수로 살았던 김 박사의 12년 삶을 학자로서 잃어버린 12이라고 제목을 붙였고 당사자인 김 박사도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니 참으로 서글픈 소제목이다. 헛살았다는 뜻인가? 빼앗긴 세월이었다는 말인가? 수사학적 표현정도로 치부하기에는 큰 아쉬움과 여운이 남는 대목이다. 내용을 들어보면 질퍽한 한국교회의 내부사정과 특별히 신학계의 풍토에 대한 일갈일 수도 있고, 아니면 노학자의 깊은 회한(悔恨)이 담긴 개인적 고백일 수도 있겠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면,

 

(전략) 하나님께서 저에게 학문적 은사를 조금 주셔서, 저는 연구와 저술, 그리고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기를 염원했는데, 그러지 못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이유들 중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저의 개인적인 한계성이었겠지요. 그러나 갈등이 많고 격동하는 한국이라는 사회의 한계성, 아직도 채 성숙하지 못한 한국교회의 여건도 작용했죠. 전 안정된 유럽과 미국의 학계에서 동료들이 연구와 저술과 교수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보면서 늘 부러워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도합 12년 이상을 가르쳤지만,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었어요. 그 시기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광야의 시기였습니다. 한국교회를 많이 배우게 된 소득은 있었지만, 학자로서는 저의 황금기를 한국에서 잃었습니다. 그게 한국의 신학자로서의 저의 숙명이었죠. 학교들이 지연, 학연이 없으면 발을 붙이기 어렵고, 학교가 개인의 사물화 또는 개인 왕국이 되어 버리거나 교단 정치꾼들의 노리개가 되고, 그들의 비리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소요가 끊이지 않아, 차분히 앉아 연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실하고 비리로 얼룩진 학교들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는 불쌍한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주는 월급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양심의 문제로 여겨질 때도 많았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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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국을 떠난 후로 한국의 교계와 신학계와 신학교들이 바뀌었는가? 물론 많은 진보와 개선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아직도 만족할만하지 못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최소한의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이 존중되고 있는가? 세상을 이끌어갈 만한 도덕적 힘이 있는가? 물신숭배와 자기왕국 건립에 몰입하고 있지 않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가? 나도 한국에서 20년째 신학교육에 몸을 바쳐 일하고 있다. 김 박사께서 말한 잃어버린 세월 12에 대해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지, 그는 지금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그런 소신을 밝히고 있다. 마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이 떠오른다.


한편 이곳에 있는 나는 번민하는 여러 동료들과 함께 아쉬움을 뒤로하고 주어진 한계 내에서 일하는 법을 터득하고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상황이 좋지 못한 곳에서 무언가 작은 기여를 한다면 그게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는 생각에 일말의 안도감을 갖는다. 내가 무엇을 하여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조그만 손길을 내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지금의 소원은 몇 년 후 김 박사와 같이 학자로서 잃어버린 세월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이 글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서 유감(遺憾)이 아니라 그저 느끼는 바가 있어서 적어본 유감(有感)이기를 바란다.

 

대담 기사는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6875


십자가와아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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