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4 11:48
“답답한 세상에서”
- 하박국 1:1-11 -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교회는 탄식하는 방식을 배워가야 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회의 신앙적 문제를 다를 땐 언제나 두 가지로 요약해서 다루곤 합니다. 하나는 우상숭배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불의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첫 번째 문제는 우리가 충성을 다해 섬겨야할 유일한 주군(主君)이 누군가에 관한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서에서도 이 두 가지 문제가 깊숙이 배어있습니다.
먼저 하박국서는 예언자 하박국의 깊은 장탄식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느 때까지 이 지경이 계속되어야 한단 말입니까?”(2절) 뭐가 그렇다는 말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탄식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어지럽고 폭력적이고 악은 불같이 번지고 있는데 왜 하나님은 방관하시고 계시는가 하는 탄식입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에 대해 예언자는 매우 힘들어 합니다. 그는 길고 긴 고뇌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언자가 보고 있는 세상은 파멸과 폭행,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이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폭력적 사회입니다. 정의라는 것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정의가 있다고 하여도 실상은 비틀려진 정의입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일이 도처에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은 폭력과 분쟁의 희생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둘째로, 예언자 하박국은 하나님께 “어찌하여 저로 이런 꼴을 보게 하십니까?”라고 항변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서 나로 하여금 이런 더럽고 추하고 끔찍한 꼴을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이런 “언제까지”와 “어찌하여”라는 질문은 종종 우리들이 내뱉는 외침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그러진 사회 안에 개입하셔서 뭔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꼼짝하시지 않으시니 정말 답답하기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탄식과 호소의 기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때 먼저 가슴아파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일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의 시간에” 반드시 개입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사 전부가 하나님의 활동무대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결코 악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시간에 악은 반드시 점검되고 다스려질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유성만큼이나 그분 마음대로 결정하실 것입니다. 때론 이방세력들을 심판의 도구로 삼으시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바벨론인들을 불러들여 자기 집안을 청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채찍질 사명도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11절).
[기도] 주님, 세상이 어지럽고 깜깜할수록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