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9 01:26
“망망대해 풍랑 속에 일엽편주(一葉片舟)”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항해 기사가 나옵니다(27장). 로마 황제 앞에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 항구에서 출발하여 로마로 가는 멀고 긴 항해 기사입니다. 그 배가 터키의 남부 무라 항구에 들렸을 때 거기서 바울을 비롯한 여러 죄수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하여 로마로 가는 대형 곡물 수송선으로 갈아탑니다. 바로 이 알렉산드리아 곡물 수송선이 지중해에서 예기치 못한 강력한 북동풍(유라굴로)에 휩싸여 표류하게 됩니다.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은 열나흘 간 망망대해에서 폭풍과 풍랑, 굶주림과 추위와 사투를 벌입니다. 결국 선박은 파선하고 승객 276명의 목숨만은 간신히 살아남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항해 기사로부터 크리스천들은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아니 무섭고 두려운 이 항해 기사를 통해 어떤 영적 진리를 배우게 될 것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은 한 가지 사실에만 집중해 보지요. 이 세상에는 우리의 통제를 넘어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예측하지 못한 갑작스런 일들이 발생합니다. 남서풍이 불어오는 계절이라 생각하고 항해하는 데 갑작스레 북동쪽에서 태풍이 불어 닥칩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조각의 작은 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삶이라 불리는 위험천만한 모험 속에서 죽음이 우리 피부에 아주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공포가 엄습하는 두려운 순간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주 복잡하게 얽히는 일들이 목을 조여 갈 때 숨 쉬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때론 목구멍까지 물이 차오를 때도 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해도 달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바다 항해처럼 말입니다.
이럴 때 신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우리가 배우고 가져야할 신앙은 이러한 환경들과 상황들을 제거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극한 상황에서 견디고 인내하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게 신앙의 진면목일 겁니다.
바울과 그와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머리털 하나도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끝까지 버티고 견디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도주하려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바다 항해를 너무도 잘 아는 전문가 선원들이 그랬습니다. 자기들만의 목숨을 위해서 도주하려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안전하게 육지에 상륙하게 됩니다.
인내하며 견디는 일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힘인지 배우게 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서에서 신앙 공동체가 당하게 되는 심한 박해에 관해 말씀한 후에(21:12-17) 마지막으로 이렇게 적고 습니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목숨(영혼)을 얻게 되리라.”(18-19절) 인내와 견딤, 즉 인고(忍苦)가 신앙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재료임을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덩굴 관목가운데 인동목(忍冬木) 혹은 인동초(忍冬草)라 불리는 식물이 있습니다. 이름 뜻이 참 좋습니다. “겨울을 견디어 내는 덩굴나무.” 인동목 그리스도인, 인동초 신앙, 그렇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마태 24:13).
사진 1: 풍랑 속의 일엽편주
사진 2: 인동덩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