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죄수 바울과 로마군 대대장 율리오 에피소드"

행전 27:3

 

"이튿날 배를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라"

 

 

[1] 팔레스타인에는 망망대해 지중해 해안에 건설된 아름다운 항구 가이사랴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곳엔 로마 총독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 총독부 관저 안의 구치소에 2년간 구류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울입니다. 그는 무책임한 총독 때문에, 지루한 법리 다툼 때문에, 질질 끄는 판결 때문에, 총독이 갈리는 일 때문에, 무작정 연금 상태로 보낸 지 2년 세월이 흘렀던 것입니다. 억울한 세월입니다. 마침내 바울은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압송되어 갑니다. 중무장한 로마 경호대의 철통 감시아래 바울을 태운 배는 로마로 가는 긴 항해 길에 들어섭니다.

 

[2] 로마로 가는 기나긴 항해에 관한 사도행전의 기사(행전 27장)는 고대 바다 항해에 관한 가장 생생하고 숨 막히는 묘사들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고대 항해술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일 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숨을 멈추게 하는 생생한 항해묘사는 압권입니다. 누가가 바울을 동행하고 있었기에 그는 이 항해여정을 일인칭복수형(“우리”) 문장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추측에 의하면 누가는 배의 의사로 고용되었고 데살로니가 출신 아리스다고는 승객명부에 바울을 시중드는 보조원이나 아니면 바울과 똑같은 죄수로서 호송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3] 가이사랴 항구를 떠난 아드라뭇데노 호는 이튿날 시돈에 정박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책임자는 백부장 율리오였는데, 그가 지휘하는 부대를 “아우구스투스 대대”라고 부르는 것을 봐서,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예에 걸 맞는 막강 부대였던 것 같습니다. 고대의 페니키아 제국의 중심 도시 국가였던 시돈 항에 정박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 로마군대의 호송대장 율리오가 바울에게 하선하여 시돈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고 돌아와도 좋다는 외출 허락을 내립니다.

 

[4] 로마로 압송되는 죄수를 시돈 항구에 정박 중에 외출 허가를 주었다는 것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호송대장 율리오의 판단 착오가 아닌가요? 어떻게 죄수를 풀어주어 시돈 시에 사람들을 만나도록 허락한단 말입니까? 죄수가 도주라도 하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날지를 모른단 말인가요? 벨릭스 총독과 그의 후임 베스도 총독 아래서 질질 끌어오던 재판의 당사자이며 골치 아픈 죄수 바울을 시돈 시에 그냥 풀어주는 꼴이 아닌가요? 로마군의 기무사 요원이 이 사실을 알고 상부에 보고한다면 율리오 대장의 앞날은 어두운 터널이 될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율리오 대장이 아니겠습니까?

 

[5] 시간적으로 바울과 율리오가 함께 시간을 보낸 기간은 기껏해야 며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며칠간의 만남 후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인성과 연관을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6] 다음 구절에서 실마리를 별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튿날 배를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시돈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닫기를 허락하였다.”(3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하게 대하였다는 것입니다. “친절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필안드로포스”는 윤리적이고 개화된 도덕적 행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고 하는데, “진정으로 사람대접 하다”, “사람을 사랑하다”는 뜻입니다. 율리오는 바울을 죄수로 본 것이 아니라 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대하였다는 것입니다. 갑과 을의 관계, 권력자와 피지배자의 관계, 힘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리오는 바울을 대하고 다루었던 이전의 다른 백부장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칭찬 받아야할 인성과 윤리성을 지닌 로마인 장교였습니다.

 

[7] 그러나 손바닥도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이 백부장 율리오의 친절한 행동이 일방적으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성품의 진면목을 알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며칠 동안의 만남이 전부였을 바울과 율리오 사이의 이런 친밀하고 따스한 관계가 가능했다면, 바울의 성품의 숨겨진 한 면목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바울에게는 다른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이는 매력이 있었고, 그러한 사귐과 교제를 통해 짧은 기간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율리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누군가에게 진정성을 갖고 다가와 깊게 사귀는 그 모습에 율리오는 묘한 매력을 느꼈을 것입니다. 영국의 신약학자인 F.F. 브루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누가의 항해에 관한 기사는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기 쉬운 그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바울의 사람 됨됨이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바울, 397쪽).

 

[8] 사람은 위기의 상황이나,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을 때 자신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처신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날 것입니다. 바울과 율리오의 에피소드는 누가 보든 안 보든, 그저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든 진정성을 갖고 만나고 말하고 대하는 일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단편입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 듯이 사는 삶이란 결국 다른 사람을 인간적으로 친절하게 대하고, 진실성 있게 사귀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강화도 성공회강화성당 내부(1900년)" Credit Daniel Ryou

*자기를 수련하고, 마음을 닦고,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하라" 교인이 세례받을 때의 마음 가짐을 표현함 *

강화성당내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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