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겪은 불행한 사건”

행전 4:36-5:11

 

사도행전 초반부에 삽입되어 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참한 죽음 이야기는 종종 교회에서 헌금을 강조할 때 사용되는 불행한 설교 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건의 전후문맥과 그 시대적 배경을 조금만 알아도 그 이야기가 단순히 헌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헛된 명예 추구와 인정욕구가 부른 대참사 이야기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은 본문의 구성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아나니아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보고 바로 앞에 바나바에 관한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즉 바나바와 아나니아를 렘브란트적으로 대조해서 놓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행전 4:37)는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나니아는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만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5: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나니아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었고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왜 아나니아가 그런 짓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사탄의 온전한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질책의 말 속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5:3)

 

사탄의 지배를 받는 아나니아의 마음에는 바나바가 사도들과 공동체 안의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질투와 시기가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과 비교하는 악성 습관이 경쟁심을 부추기면서부터 일이 잘못 전개 되어가게 된 것입니다. 아마 그는 바나바가 교회 공동체에서 “뜨는 것”을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바나바가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을 보니 자기도 그러고 싶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비교의식에서 나온 그의 비뚤어진 헌신은 결국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자신도 공동체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은 체면의식, 경쟁의식,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 명예에 대한 갈망, 인정욕구 발동 등에 따른 돌발적이고 충동적 헌신 행동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헌신들은 반드시 그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불순한 동기는 때론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속일 수는 있지만 성령은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공동체나 교단적인 차원에서도 비슷한 현상들을 감지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지도자들이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됩니다. 가인은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셨다는 소식에 속이 상했습니다. 기뻐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칭찬하고 박수를 쳐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뭔가 자신에게는 구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가인의 마음은 아주 불편했습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이 발동하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벨을 죽음으로써 회개할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아나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 속의 선함을 받아들일 수 없는 밴댕이 속, 비교의식, 인정욕구, 피해의식, 열등의식, 명예 밝힘과 같은 영적 병리현상들이 결국 그를 치명적인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서 얻은 힘이 삶 속에 작동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 소유를 어떻게 취급하고 다루어야할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 소유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가 본문에서처럼 단순히 물질적 욕심을 넘어서 명예와 공동체 안에서의 자리와 지위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유념해야할 것입니다. 명예와 인정욕구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디 한 사람 아나니아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내면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면 말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생가 마을"

다신 정약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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