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13:16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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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자극하는 여러 매체가 있다. 어떤 일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 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보고, 말하고, 듣고, 읽는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일상의 행위들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이런 일상의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하는 예식이다. 특별히 예배의 중심에 있는 설교가 그렇다. 설교는 주로 말하고 듣고 하는 일을 주도한다. 설교자는 말한다. 교인들은 듣는다. 한편 설교자는 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 그에게 있어서 읽는 일은 말하는 일에 앞선다. 설교자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다. 결국 성경이 기독교인들, 목회자들, 설교자들의 삶에 중심이 안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글로서 성경을 읽는데, 다른 책과 다르게 읽는가? 아니면 다른 고전을 읽듯이 읽어도 되는가?
철학자이며 신학자(철학신학, Philosophical Theology)인 강영안 교수가 “읽는다는 것”에 대해 한 말씀 했다. 큐티 하나로 일약 명성을 얻고 대형교회를 일군 김양재 목사가 사역하는 “우리들 교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강연한 것을 밑바탕으로 그간 강 교수가 철학적으로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온 “읽는다는 것”에 대해 더 넓은 독자층을 위해 온전한 책으로 출간했다. 먼저 강 교수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김양재 목사와 우리들교회의 성경읽기와 묵상방식이 기나긴 기독교전통의 성경읽기와 묵상방식에 충실할 뿐 아니라 동서양 독서법 전통과도 잇닿아 있다”(9쪽)는 말로 시작한다.
책의 내용은 본인이 잘 설명한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자와 읽는 행위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철학과 성경을 배경으로 살펴보는 첫 번째 부분이 있다(1-3장). 두 번째 부분은(4-6장)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읽기의 현상학), 어떻게 읽어야 할지(읽기의 해석학), 읽는 것이 사람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읽기의 윤리학)를 다룹니다. 마지막 세 번째 부분(7-9장)은 제 2부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물음을 가지고 성경을 실제 삶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마지막장인 10장은 첫 장(1장)에서 던진 질문, 즉 “읽는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다시 되짚어 질문(왜 읽어야 하는가?)힘으로써 끝을 맺는다.
강 교수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동의하겠지만, 그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함에 놀랄 것이다. 동서고전을 막론하고 꼭 필요한 자료들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차곡차곡 세워나가는 철저한 논리성에 독자들은 감탄하리라. 그의 독서량과 책 사랑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강 교수는 내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학우(學友)이고 말이 통하는 동료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리라.
거의 십여 년이 되어가는 어느 해였다. 우리 딸네 집이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이기에 여름 방학이면 그곳에 가곤했다. 당시 강 교수는 미국 캘빈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있었는데 내가 그곳에 가서 그를 처음 만난 장소는 그의 집도 우리 집도 아닌 우연히 들린 베이커 출판사 신학서점(Baker Book)에서였다. 나는 중고 서고 한 구석에서 뭔가 열심히 책을 찾아 읽고 있는 강 교수를 발견했다. “아니 철학자가 뭔 신학서점에 죽치고 계십니까? 이곳은 내 영토인 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뿐 아니다. 강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집에 가서 보니 벽난로 앞에 책이 산더미처럼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아마 수백 권 정도나 되었다. “아니 저 책이 뭡니까?”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 신학 서적들이었다. 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어드만, 베이커, 존더반, 크레겔 등과 같은 신학 출판사를 싹 뒤져 필요한 신학서적들을 다 구입한 것이다! 엄청난 독서량과 지극한 책사랑은 이른바 정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다시 돌아가 그가 펴낸 《읽는다는 것: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을 익다보면 독자들은 읽는 일에 관한 수많은 철학적 계보와 가르침을 얻게 된다. 플라톤과 문자, 칸트의 존재론과 지식이론, 가다머의 해석학, 폴라니의 과학철학, 후설과 문자에 관한 강 교수의 설명은 그가 말하려는 읽는다는 것에 관한 방향설정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인 독서법 전통을 다루는 제5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를 더 해줄 것 같다. 12세기 중국의 유학 학문 전통을 세운 주희(1130-1200)의 독서방법론과 유럽의 기고 2세(Guigo II, 1188사망)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 렉시오 디니나(Lectio divina) 전통이 그것이다. 강 교수가 주희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니비나를 다루면서 “읽기의 윤리학”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즉, 읽는 것이 사람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 읽기의 윤리학이기 때문이고, 확장하자면 성경을 읽는 일이 그리스도인 됨과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독서의 목적은 단순히 지적 정보의 축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독서의 목적이 지식 정보 축적에 머무른다면, 현학적 허세와 같은 지적 교만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불편한 사실을 말하자면 많은 학자들/목사들의 독서량은 때론 현학적(衒學的)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이렇게 많이 읽었어!” 하는 식이다. 그러나 독서의 목적은 지식 정보의 축적을 넘어 그 지식이 자신을 새롭게 형성하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데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언어로 하자면 독서는 information을 넘어 formation으로, formation을 날마다 함으로써 re-formation(재형성, 개혁, 변혁)을 하게 되는 것이고, 날마다 하지 않고 멈추면 de-formation(괴물화, 일그러짐, 추하게 됨)이 되는 것이다. 독서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독서 행위”에 관한 철학-신학적 해설로 다양한 예와 개인적 일화(뉴비긴, 본회퍼 이야기 등)를 통해 “읽는다는 것”의 함의를 다층적으로 밝혀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저는 우리에게 어떻게 읽으라고 제안하는가? 무엇보다 성경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주관적 읽기와 객관적 읽기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 전자는 주로 큐티 하는 데서 발견되는 경향이고 후자는 좀 더 학문적으로 읽는 층에서 선호하는 듯하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성경읽기를 제안한다. 이른바 “인격적 읽기”다. 강 교수는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에 상응하는 “인격적 읽기”를 주장한다. 성경읽기에는 더더욱 알맞은 독서법이 아닐 수 없다. 일차적으로 읽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몸과 정신)을 통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편이시기에, 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없이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받아들임으로써 그는 말씀에 의해 형성(formation)되고, 말씀을 살아낼 수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성령의 역할은 당연할 뿐 아니라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읽는 자”는 “기도하는 자”여야 할 것이다.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는 신앙공동체가 교회라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하며”(히, 하가) 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 같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순종하면서 한길 가는 나그네처럼 말이다.
추신: 이 책은 “읽는다는 것”에 집중한 책이다. 성경(책)을 읽는 것을 전제로 한 주제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책을 읽거나 읽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식자층에 국한되는 일로 치부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책에서 제안하듯이 책을 정교하게 읽을 수 있는 훈련이나 상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 일”을 신앙에 중요부분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 책의 유용성과 함께 설교자들/신학도들은 “듣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으리라. 일세기 만해도 성경은 각 지역 신앙공동체에 회람되어 공공 예배 시간에“봉독(奉讀)”되었기 때문이다. 대표자가 회람된 성경을 “받들어 읽으면”(奉讀) 회중석에 있는 사람들은 들었다. “읽는다는 것” 이상으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선교지 상황을 생각하거나, 많이 배우지 못한 노년층의 상황을 생각하거나, 매일 일터에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읽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신앙행위인지 인식하게 된다. 로마서 10:17을 기억해보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강영안,《읽는다는 것: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IVP, 2020), 270쪽, 정가 13,000원
2020.06.29 13:42
2020.06.29 21:14
그럼 서론만 읽으슈. ㅎㅎ
2020.06.29 13:59
강영안 교수님의 신간 소식이 반갑고 읽는다는 것을 통해 듣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어 좋을 듯 합니다.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0.06.29 21:13
아멘...생각할 거리를 주지요.
2020.07.02 10:44
몇일전 미목원에서 ZOOM으로 진행한 북토크에 참여했었어요. 저자의 목소리로 듣고 나니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좋은책 추천 감사해요~~:)
2020.07.02 22:29
아하... 그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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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다는 것! 듣는 것도 읽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저는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수님^^
(이유: 눈이 피곤 하고요. 서론이 너무 길어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