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01 18:08
“자연을 사진에 담는 그리스도인”
류호준
자연을 벗 삼아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게 언제나 정갈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얼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칠흑 같은 어둔 밤, 강추위의 설산, 망망한 광야와 사막, 석양의 실루엣도 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신비한 신의 계시다. 신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그 절묘한 매듭들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하늘과 바다, 산과 늪, 바다와 광야, 꽃과 돌멩이와 모래와 바람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민한 청력과 청결한 시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안다. 그의 묵상시화(默想詩畫)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마치 C. 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며, 조셉 하이든의 장엄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듣는 듯하다. 그곳에서 여러분들은 역설적 삶의 진실들을 만나고 보고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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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에도 애잔한 꽃들이 피고, 지하 동굴 교회의 어둠 속에 풋풋한 신앙의 꽃 봉우리가 트이고, 태고의 바다에 용솟은 섬들이 오케스트라가 되어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바닷가 찬란한 금빛 돌멩이는 허상을 쫓는 인간의 거울이 되고, 기대고 싶은 갈망 속에서 영원을 향한 그리움을 발견하고, 안개 낀 뚝방길 모서리에서 이름 모를 야생화를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등 뒤로 숨긴 코스모스 한 송이를 살며시 내미는 그 사람의 미소를 보고, 고달픈 멍에가 명예로운 훈장이 되는 날을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아득한 광야 길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 별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눈물을 지우며, 빛의 광휘에 온몸을 맡기면서 일궈내는 황홀한 인생 실루엣을 맛보고, 해안에 부딪치던 흉용한 파도가 자갈들에 부대끼며 부채꼴 모양의 소리들을 내던 날을 기억하고, 칠흑 같은 밤이 온정어린 신의 손으로 바뀌는 순간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장엄한 패배 속에 밝아오는 여명을 보던 순간에 어지럼을 느끼고, 쓰라린 마라에서 엘림 오아시스까지의 거리가 겨우 하룻길이라는 것을 뒤늦게라도 알았을 때 허탈의 기쁨에 몸 가누지 못하고, 물속에 빠져가면서도 물위로 걸어가는 신앙의 역설을 몸으로 익히고, 비움을 통해 채움의 진리를 배우고, 누군가의 좌표가 되면서 자신은 사라지는 용기를 발휘하고, 찬란한 상고대의 기품과 의연함을 바라보며,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직립인간의 결의와 하늘의 희망을 엮고, 솔로몬의 찬란한 영광을 너머서는 지천에 깔려 있는 허드레 꽃들의 아름다움을 보는 정갈한 시선을 가져보며, 호롱불을 밝히던 시골집에서 발견한 영원한 안내자에게 감사한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시 19:1-4)
* 이 글은 묵상화보를 만드는 어느 크리스천 사진작가를 생각하면 쓴 글이다.*
Bond Falls. Upper Peninsula, MI. Credit Josh Herman
캐나다 퀘벡의 단풍을 생각나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