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3 00:37
“헤어짐은 언제나 낯설어요!”
목회를 하다보면 몹시 서운하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던 정든 교인이 교회를 떠날 때입니다. 그제 주일이 그러했습니다. 가족 전부가 먼 곳으로 이사하게 되어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두 딸을 가진 30대 후반의 마음씨 착하고 고운 오 집사 부부(부부가 모두 오씨 성을 갖고 있음!)는 지난 11년간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갑작스런 이사소식에 어떤 교우들은 그들이 그렇게 긴 세월동안 함께 자기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겸손히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존재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들에겐 아주 예쁜 두 딸이 있는데 시현과 수현입니다. 큰 딸 시현은 이번 3월부터 초등학교 2년이 되고 작은 딸 수현은 5살이 되었습니다. 둘 다 내가 유아세례를 주었으니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정성스런 가정교육 덕이겠지만 두 어린 딸들은 상냥하고 인사성이 바르고 언제나 교회 어른에게 존댓말을 하며 몸가짐이 반듯했습니다. 내겐 주일 예배 후에 어린 시현과 수현을 보는 즐거움은 청량제였고 때론 방금 전의 설교 피로를 씻어주곤 했습니다.
오 집사 부부는 둘 다 서울대에서 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지만 늘 겸손하고 무엇보다 신앙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습니다. 오 집사 부부의 나이가 내 큰 딸과 사위와 비슷했기에 더 많은 정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남편 오상호 집사는 중앙정부 부처의 지방이전 정책 때문에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두 달 전에 목사인 내게 알려주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오집사의 이사 소식을 듣고서 서운함과 서글픔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 들었는데 떠나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이별에 면역성이 강하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것을 들었지만 나는 헤어짐이란 괴물에 후천성 면역결핍증을 앓고 있는 환자인 듯합니다.
하기야 목사가 된 후로 내겐 늘 “이별” “헤어짐”이란 단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목회하는 중 언젠가 사람을 떠나보내거나 헤어져야할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내 마음은 허전하고 심지어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선지, 누군가와 언젠가 이별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종종 남모르는 우울함에 몇 날을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에 먼저 이별과 헤어짐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이별이 죽음이거나 이민이거나 이사거나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다툼 때문에 생긴 이별마저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사람입니다.
이사 날짜가 2월 말 정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내 마음 한켠에는 헤어짐의 비애가 꽈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엊그제 주일 아침에 아무런 일없이 설교와 예배를 마치고 아래층 현관에서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려고 서 있는데 뒤에서 오 집사 부부와 두 딸이 조그만 박스에 뭔가를 들고 나타난 것입니다. 주일 아침 본당 예배 시에 오 집사 부부가 보이지 않아 교회에 출석하지 않은 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층 본당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일층 어린이 방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온 것입니다. 그 때 내게 인사를 건넨 오 집사 부부는 두 딸과 함께 이층에서 내려오는 교인들에게 뭔가를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분 한분에게 자그만 선물들을 나눠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맛을 내는 독일산 캔디(Em-eukal) 봉지였습니다. 어린 두 딸들은 조막만한 손으로 어른들에게 공손히 선물을 건네고, 오 집사 부부 역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따스하게 잡고 그 동안의 정을 고마움으로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평생에 교회를 떠나면서 이렇게 정성어린 선물을 준비하고 교인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뭉클함과 목매임의 순간이었습니다. 선물을 쳐다보는 순간 선물에 일일이 감사의 글을 붙이는 부부와 어린 딸들의 행복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원래 2월 마지막 주일 예배 시에 공식적으로 작별 인사를 시키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 집사 부부는 그것마저 교회 여러분들에게 폐를 끼칠지 모른다면서 한 주 먼저 내게 선제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 사려 깊은 사랑의 비수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서운했습니다. 말로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이 목사에게 오 집사 부부는 캔디 같은 사랑으로 융단 폭격을 한 셈입니다. 마음씨 곱고 착한 교인 한 가정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나는 헤어짐의 화학성분을 자세히 알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겠지만요. 헤어짐은 언제나 낯이 선가 봅니다. 떠나보내는 연습을 많이 해도 헤어짐은 언제나 낯이 설기는 마찬가지이리라.
잘 가세요. 오상호 오정은 집사님, 그리고 어여쁜 시현과 수현. 몇 년 후에 만나면 시현은 몰라도 수현은 아주 센 경상도 억양으로 내게 인사하겠지?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2018.04.30 22:26
2020.05.03 19:33
목사님, 제가 이 글을 이제야 보았습니다.
늘 죄송하고 감사한데, 이 글을 보니 제가 은촛대 마저 받아든 장발장 같습니다.
사모님이 알려주신 최근 인터뷰 기사 보았습니다. 성경-신학-삶의 균형과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늘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에 대한 기억으로 행복하고 또 오늘을 분별하며 살고자 합니다. 가족분들과 함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ps - 부산 오시면 꼭 연락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공감가는 " 정들자 이별 " 이네요 ~ 막상 이별을 앞에 두면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그게 인생사라고 자꾸 되뇌이다보면 좀 면역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 promptly and sincerely 참 좋은 글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