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0 11:54
“교통카드 유감”
내가 다니는 학교에 건축문제로 주차장을 홀수짝수제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내 차량번호가 홀수로 끝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당당하게 신용카드를 기계에 대었습니다. “삑”하는 경쾌한 기계음을 기대하였지만 기계는 냉정한지 무심한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내 뒤로 올라타기에 나는 그들을 위해 잠시 길을 비켜주고 다시 시도했습니다. “삑”하고 소리가 나야하는 것 아닙니까? 두 번 세 번 해도 먹혀들어가지 않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고 나는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주머니 속의 다른 체크카드를 들이대었습니다. 헐. 이것 역시 먹히지 않습니다. 좁은 승차입구에 서서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불발이었습니다. 이미 내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현금으로 도전하기로 맘을 먹고 지갑을 열어보니 헐. 이게 뭔 날벼락? 오만 원 권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느끼겠지만 버스 타면서 그럴듯한 복장의 신사가 오만 원 권 지폐를 낸다는 것은 너무 거만스레 보이기 십상입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것 밖에는. 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생님, 5만 원 권 밖에 없는데 어쩌나요.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그런데 운전대에 앉아 계신 이 정장 차림의 중년 기사 아저씨의 입에서 나는 기대하지 못한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은혜스러운 말씀이었습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어요. 어쨌거나 그렇게 큰돈을 바꿔줄 거스름돈도 없어요. 그냥 편안히 타고 가세요.” 나는 어쩔줄 몰랐습니다. 은혜가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서양사람들이 은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실감났습니다. "은혜는 어지러움증을 유발한다!"( Grace makes you dizzy!) 와우! 이게 은혜가 아니고 뭐겠는가! 사각(死角)을 통해 들어오는 은혜만이 진짜 은혜라고 하더니, 이게 그런 은혜가 아니고 뭐겠는가! 사죄의 은총이 이런 것이구나!
내려서 걷는데 오늘 아침 공기가 유달리 신선했습니다. 은혜를 입고 사니 마음도 넉넉해지는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외에 달리 어떻게 그 은혜에 대답하겠습니까? 은혜를 상실하고 사는 각박한 세상에서 오늘 아침 나는 지극히 적은 한 방울의 은혜에 넉넉하게 영혼의 목을 축였습니다. 학교에 출근하자마자 교통카드 한 장을 편의점에서 구입했습니다. 두 번째 은혜가 주어질는지 의심스러워서!
[교통카드, 5만원 충전]
은혜네요^^ 은혜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