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02 22:38
Clean Joke
“시발택시” 유감
1950년대 말 어린 나는 영등포구 양평동, 그러니깐 지금의 양화대교 남단의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어느 날 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영등포 로타리에 있는 한 극장에 영화를 보러간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영등포 로터리에는 "연흥" 극장이 있었는데 몇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던 "서울"극장과 함께 영등포 일대에서 쌍벽을 이루는 극장이었습니다. 연흥 극장에서 상영 중이던 챨톤 헤스턴 주연의 “십계”를 부모님과 함께 보러 간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택시를 불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생전 처음 택시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버지가 택시 이름을 부르는게 아주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이름 하여 “시발택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동차는 1955년에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자동차였습니다. 그 택시는 어린 나에게 얼마나 황홀한 꿈의 자동차였는지, 그 시발택시의 각이 잡힌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상한 이름의 택시구나!" "시발 뭐라고?" 이것이 꼬맹이 내가 가졌던 의문 전부였습니다. 어린 내가 어찌 "시발"의 의미를 알았겠습니까? 어린 나이에도 그 이름이 상스런 욕과 유사발음이라 불편했지만, 그래도 친구들에게 시발택시 탄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은 엄청나게 나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시발” “시발” 거리더니 나중에야 “택시”, “택시” 하는 것이었습니다. 개구쟁이들이었습니다. 시발택시를 탄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택시 이름을 가지고 나를 약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른 채로 55년이 흘렀습니다.
어제 2015년 정초에 대한민국 해방 70년 특집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다 화면에 시발택시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잊어버리고 산 옛 애인이라도 만난 듯이 그렇게 기뻤습니다. 6.25 전쟁후 가난하고 어려웠던 어린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그리고 코흘리개 친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시발택시!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 "시발"이라는 것이 한자어였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하고 출발한다는 의미의 “시발”(始發)이었습니다.
“시발(始發)택시”라! 물론 발음이 좀 거시기했지만 내겐 황홀한 임금님의 마차를 떠올리게 했던 멋진 자동차였습니다. 우리 아버지와 엄마가 큰 아들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간 추억에서부터,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와 영등포 시장 어디선가 늦은 저녁 식사를 했던 기억, 그리고 시발택시를 잡아 문을 열고 그 높은 계단을 밟고 차안 소파에 앉았을 때의 황홀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보물들이 추억의 창고 문을 열고 하나둘씩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시발”택시를 지금의 말로 번역하자면 뭐라고 할까 생각해 보니 갑자기 이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현대차 “제네시스”(Genesis)였습니다. 영어 “제네시스”를 한자어로 번역하자면 “시발”이기 때문이다. 모두 “시작”(beginning)과 관계를 맺는 용어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영어로 “제네시스”하면 있어 보이고 “시발”하면 천스럽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네시스”나 “시발”이나 모두 우리 민족의 자동차 발전사에 “창세기”이기 때문이다. “시발”은 국내에서 제작된 최초의 자동차였고, 현대 “제네시스”는 국제적으로 평판을 얻은 한국의 최초의 자동차이기 때문입니다.
시발택시 만세! 시발택시 만세! 시발택시 만세! 시발택시 이름 유감(有感)입니다! 특별히 지난해가 힘들고 어려웠고 고단했던 분들에게 2015년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하는 "시발년(始發年)"이 되기를 바랍니다!
추신: "시발년"(始發年)을 성경적 용어로 말하자면 "원년"(元年)입니다. 특별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의 유월절을 시발점으로 해서 그들의 구원 역사의 "원년"을 삼았습니다.
[한국 최초의 자동차 시발택시]
^^ 매일 새로운 시작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