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애도: "노무현 대통령"

2009.05.25 00:40

류호준 조회 수:11317

  노무현 대통령과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미국인들에게 당신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아브라함 링컨(1809-1865)의 이름이 나올 것입니다. 동일한 질문을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아마 아브라함 링컨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한국 사람들의 귀에 익숙한 미국 대통령들도 많이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우어, 헤리 트루먼, 최근의 대통령으로는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톤, 아버지 조지 부시와 아들 조지 부시, 그리고 지금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일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대통령들 중 14명 정도의 이름을 아는 것이니 꽤 많은 아는 것이군요. 어쨌건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아브라함 링컨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 링컨을 존경하느냐고 다시 묻는다면 대답은 좀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대답의 골자는 동일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정하고 독학으로 공부하여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노예해방령(1862.9.22)을 선포하여 미국 역사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실천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특별히 그분의 입지전적인 삶의 여정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가 평생에 공식적인 학교교육이라곤 18개월이 전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랄 것입니다. 요즘말로 그는 초등학교 중퇴자였습니다. 그것이 그의 최종학력이었습니다. 그런 학력을 갖고도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 연방 국회의원이 되고 최종적으로 미국의 16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연극 공연 관람 중 남부군의 첩자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1865.4.14).


아마 이런 입지전적인 인물이었기에 미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이 모두 아브라함 링컨을 좋아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브라함 링컨을 존경하는 한국 사람들이 막상 자기들 가운데 그런 출신이 나오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들은 매우 이상한 유전인자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적 사고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고 다니고 있으니 이것 또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것이 완벽한 위선이 아니라면 정신구조가 좀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내가 볼 때 권위주의와 권력지향성에 너무도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가 지금 이렇게라도 굴러간다는 사실이 정말 기적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아브라함 링컨보다도 더 많이 공부한 사람,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이상을 나와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대통령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상고(商高) 출신 대통령들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목포상고 출신이고, 노무현 대통령(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은 부산상고 출신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분들입니까? 가난과 고난의 길을 헤치고 마침내 국정 최고의 운영자인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공격할 때는 항상 그들의 학벌을 거들먹거렸습니다. “역시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출신이라서…” 등등 그렇게 사람의 인격을 매몰하고 서서히 죽여 갔습니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학벌주의와 기득권층의 집단적 이기주의는 학력이 덜한 사람들,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을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심지어 대통령이라 해도 그랬습니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세월동안 이뤄놓은 또 다른 연고 때문에 그나마 잘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바보 노무현은 전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는 망국의 병인 지방주의와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바위에 자신의 몸을 바쳐 도전했으나 결국 그 거대한 암벽에 몸을 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의도의 정치권이나 서초동의 권력가들이나 중앙청사의 관료들은 인분보다 더럽고 추한 학벌주의와 권력마약에 매몰된 채로 사회적 정의와 공의는 아랑곳없이 창녀들처럼 무의미한 몸놀림으로 권력 자태만을 뽐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집단적 광기를 숨긴 채 지극히 교만한 자태로 별 볼일 없는 저학력 대통령을 내리깔고 무시했던 위선적 집단들에 대해 깊은 서글픔을 느낍니다. 지금의 검찰 조직 같은 단세포적 인간 군상들과 위장된 겸손과 배려의 제스처로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비겁한 정치 권력가들의 행보에 대해 저려오는 분노를 느낍니다. 아니 다른 나라의 초등학교 중퇴 출신의 대통령에게는 존경과 찬사를 돌리면서도 막상 자기나라에서 나온 고등학교 출신의 대통령에게는 왜 그리고 모질게 구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지금 이 사회에 중심부에 서 있다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것보다 더 큰 위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 사회는 학벌(學閥)사회, 연고(緣故)사회라며 “나는 일류학교 나오는 사람들로 잘 짜인 우리 사회 각계의 판에 돛단배 하나 떠 있는 듯하다”고 비주류로서의 처지를 호소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와 꽂힙니다. 비록 그는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지만 우리 사회는 십년 이상 일찍이 온 그분의 가치를 쓰레기 하치장(荷置場)에 무참히 던져 버린 것입니다. 노무현 형님!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행복한 세월도 이제는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많이 울었다.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날”(암 5:24)이 도래하기를 기원하면서.
2009년 5월 24일 주일 밤에 몇 자 쓰다


 

모란동백

작사,작곡: 이제하(시인) 노래: 조영남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들녘에 눈이 내리면

상냥한 얼굴 동백 아가씨 꿈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모래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동백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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