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그리스도, 절대적 중심”
에베소서 1:3-14


류호준 목사

아마 여러분은 믿기가 어렵겠지만, 에베소서 1:3-14을 원어(헬라어)로 읽어보면 놀랍게도 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끝에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길고도 긴, 한 문장이 계속됩니다. 어떤 학자는 이 부분을 가리켜 그가 헬라어를 읽으면서 만난 문장들 중 가장 괴물 같은 문장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믿음의 귀를 가지고 주의 깊게 듣기 시작한다면, 여러분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는 음악을 듣는 것 같을 것입니다.

바울의 눈은 인간 역사와 우주의 역사를 휘어잡는 포괄적인 조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환상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르고, 그의 비전은 세상의 창조 이전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한 분 머리 밑에 두실 바로 그 시간의 종말에까지 이릅니다. 그때 창조세계의 모든 것들(萬有)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자그마한 세상은 한 때 ‘엄청난 추락’(우리는 이것을 전문적 용어로 ‘타락’이라고 부른다)을 경험한 일이 있지만, 그래도 세상은 산산조각나지 않고 존속해 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가 배출한 이전의 모든 위대한 왕들과 그의 군사들과 군마(軍馬)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시 추슬러 세워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환상, 이러한 비전보다 더 급진적이고 전격적이고 희망적인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우리는 종종, 도대체 왜 우리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왜 이 우주가 있는 것일까? 왜 하나님은 저 하늘의 수천 수억의 별들과 은하계들이 필요한가?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모두 파괴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 중 누구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 우리의 관심과 생각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우주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쓰레기 하치장(荷置場)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남미 니카라과의 시인 에르네스토 카르데날(Ernesto Cardenal, 1925~)은 이것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 일이 있습니다.


“수도원 뒤, 길 아래, 다 낡아버린 것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조각난 옹기와 접시조각들, 녹슨 쇠붙이들, 깨어진 도관(導管)들, 얽혀져 있는 철사(鐵絲), 빈 담뱃갑,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톱밥, 뭉그러진 다리미, 오래된 플라스틱, 쓸모없는 타이어들. 우리들처럼 그것들 모두는 부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무르익어 가득 찰 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워놓은 계획은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 — 만유(萬有)와 만물(萬物) — 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지금 우주 전체는 우주의 구심점이신 그리스도와 최종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그 방향으로 점차적으로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그분이 없이는 세상은 산산조각으로 쪼개어 나눠질 것입니다. 그분이 없이는 은하계와 천체는 중심을 잃고 회전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러한 우주적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우 사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주님과 구세주로만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매우 좁게 초점 추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구원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갖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우주적 측면을 간과하거나 망각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3-14은 ‘구원’과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나누어지고 깨어지는 일들에 열심을 내는 이 타락한 세상을 향해 선포된 구원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창세기 3장 이후로 분당(分堂)이 되었습니다. 깨어지고 일그러지고 삐뚤어진 세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성격이 분열됩니다. 가족이 깨어집니다. 학연과 지연과 혈연에 따라 갈라집니다. 머리카락도 이리저리 갈라집니다. 교회가 분리됩니다. 원자를 쪼개어 나누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머리까지 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삶들과 세계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힘’을 절실하게 필요로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 것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위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 — 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장차 언젠가 그런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소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가슴은 울렁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인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런 환상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 비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앞으로 천년 후에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일된다면 과히 나쁘지는 않겠지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통해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 환상이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삶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번 상상력을 동원하여 마차 바퀴를 연상해 보십시오. 바퀴 중심축을 향해 수많은 살들이 집중됩니다. 백묵(白墨)을 들고 바퀴 바깥쪽 위에 점을 하나 찍어 보십시오. 그리고 바퀴를 돌리면서 찍힌 점을 보십시오.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바퀴 중간 지점에 또 다른 점을 찍어 넣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점은 바퀴 바깥쪽에 찍은 점보다 훨씬 천천히 도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퀴의 중심부에 가깝게 점을 찍으면 점은 더욱 느리게 돌 것입니다. 그러나 바퀴 중앙 축 위에 점을 찍어 보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바퀴를 세게 돌려도 그 점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靜止)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상력을 다시 동원하여 우주의 중심부에 ‘정지’한 점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라 불리는 우주의 중심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을 중심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돌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화무쌍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라 오염되고 부패하고 시들어 갑니다. 그러나 그분을 중심으로 천체와 은하계, 세기들(centuries)과 해(年)들과 계절들과 나라들과 민족들이 돌고 있는 것입니다. 정지한 중심부에 세상 모든 것을 조절하시고 통제하시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과 함께 있는 한, 변화로 말미암은 변이(變異)나 그에 따른 그림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너희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25)고 가르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절대적 중심’에 관해 말씀하신 하나의 실례(實例)입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점점 더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께 가까이 살면 살수록,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차분해질 만 아니라 뿌리 깊은 안정을 찾을 것입니다.


[SFC 월간 큐티지『날마다 주와 함께』묵상의 글 기고문(5-6월호), 2009년 3월 23일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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