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04 22:54
[2]
“더러운 죄인들”
로마서 1:18-28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시고 …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셨으니 …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 두시고” (24,26,28절)
우리 가운데 누구도 돼지처럼 더럽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사는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매우 오만한 사람입니다. 마치 예수님 당시의 대표적 종교인들이었던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은 ‘괜찮은 죄인’들입니다. ‘몹쓸 죄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드러난 모양과 형태만 다르지 모든 사람들은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더러운 존재들입니다. 위장된 선행, 세련된 언어, 품위 있는 동정심, 친절한 행동들은 내가 그래도 당신보다 낫다는 위선의 가면 아래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들을 판단하고 심판 할 수 있습니까? 죄인이 죄인을 판단할 수 없듯이,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들을 판단하고 재판 할 수 없습니다. 유일하신 재판장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목소리로 이미 그들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요?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 여름날의 우레와 장대비, 흰 눈 덮인 산맥 그리고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큰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전문적인 용어로 ‘일반계시’라 부릅니다. 분명히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판단하실 때 그들에게 ‘변명의 여지’(20절)가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이런 핑계는 도무지 성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벌과 구원은 미래적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방식에 대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자기의 창조주와 구원자로 받아들이므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형벌과 구원은 동시에 현재적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했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걸어 다니는 계시들’입니다. 그들을 보면 “아하 저렇게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입니다(18절).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16절). 하나님의 형벌과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식하고 있는 각 사람의 내면의 목소리를 억누르거나 무시하게 되면, 그 때부터 지옥으로 가는 길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막거나 무시하면 그때부터 자신의 욕망의 소리가 크게 들려올 것입니다. 욕정과 향락, 쾌락과 세속적 정욕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충만한 삶을 위한 하나님의 (율)법들을 자신의 구미에 맞춰 새로 쓰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삶을 위한 내규와 표준을 스스로 정합니다. 하나님도 너무 골치가 아프셔서 더 이상 간섭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최악의 상태입니다.
주후 58년에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향해 세차게 달려가고 있는지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시고 알리셨다(啓示)는 사실을 일부러 무시하고 짓눌렀습니다. 마치 담뱃불을 땅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짓이겨 버리는 무지막지한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창조세계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들(창조질서, 창조규례)을 불순종할 뿐 아니라 자기들 눈에 좋을 대로, 자신들 입맛에 따라 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다.” 그들이 원하든 대로 하게 그냥 둡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찔림을 주시고 좀 귀찮을 정도로 간섭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거든 감사하십시오. 그분이 당신을 남 몰라라 하시지 않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버린 자식, 버려진 자녀처럼 비참한 경우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福音)만이 더러운 시궁창과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돼지들을 끌어내는 능력과 힘이 있습니다. 더럽고 몹쓸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멀리까지 가셨는지 생각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정말 멀리까지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 낮고 낮은 이 땅까지, 영원하신 하나님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되시는 데까지, 천상에서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그분을 버렸으나, 그리고 그분도 얼마동안 우리를 시궁창 속에 내버려두셨지만, 그분의 마음에 큰 고통과 괴로움이 더 이상 그런 상태로 있게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그를 버리신 것입니다.”(롬 8:32)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救贖)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찬송 31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