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3 17:54
“영적 독서(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의 한 예”
- 시편 138:8을 중심으로 -
여러 가지 다양한 번역본으로 시편 138장의 마지막 절인 8절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8절의 첫 번째 문장을 다양한 번역본들로 읽어보십시오. 독자의 편의를 위해 번역을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봅니다.
[첫 번째 유형]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실 것이다.” (개역개정)
“주님께서 나를 위해 그들에게 갚아주십니다.” (새번역)
[두 번째 유형 A]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 것이다.” (개역)
“The LORD will perfect that which concerneth me.” (KJV)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 것이다.” (KJV)
“The LORD will accomplish what concerns me.” (NASB)
“여호와께서 내게 관계된 것을 성취하실 것이다.” (NASB)
“The LORD will fulfill his purpose for me.” (NIV, ESV)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자기의 목적을 이루실 것이다.” (NIV, ESV)
“야훼여, 모든 일 나를 위해 하심이오니” (공동번역)
[해설]
첫 번째 유형의 번역들(개역개정, 새번역)은 하나님을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 “갚아주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두 번째 유형의 번역들은 “완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 “성취하시는 하나님,”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역의 유형은 서로 간 상당한 어감의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왜 이렇게 다른 번역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분명 원문(히브리어)은 하나일 텐데 어떻게 서로 다른 어감을 갖는 번역이 가능할까? 어느 번역이 좀 더 원문의 의미를 살리고 있을까? 번역을 비교하면서 독자들은 이런 질문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번역이든 그 번역을 곱씹으면 씹을수록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될 것입니다. 번역을 할 때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하나는 사전적 의미요, 다른 하나는 문맥적 의미입니다.
1. 사전적 의미
먼저 이러한 두 가지 서로 다른 번역이 나오게 이유를 살펴보면, “보상하다,” “이루다,” “성취하다,” “온전케 하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단어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전에서 히브리어 동사 “가마르”(גמר)는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1) 끝에 있다. 끝내다. 완성하다(시 12:2; 77:9) (2) 보복하다, 보상하다. 갚다.(시 7:10; 시 57:3; 시 138:8)
각 번역들은 사전이 제공하는 두 개의 뜻 중에 하나를 고른 것입니다. 한글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충실하게(?) 2번을 따라 번역했으며, 한글개역과 공동번역과 KJV, NIV, NASB, ESV등은 1번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사전을 따랐다기보다는 둘 다 문맥을 고려한 번역으로 보입니다.
2. 문맥적 의미
“보상하다”, “갚아주다”로 번역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앞 절인 7절의 내용 때문입니다.
“내가 어려움 중에 있어도 당신은 나의 생명을 보호하십니다. 당신은 손을 펼쳐 나의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당신의 오른손으로 나를 구원하십니다.” 시인은 원수의 적대적 공격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8절에서는 원수로부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들에게 갚아주시거나 내가 당한 어려움과 손실들을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어 동사 “가마르”(גמר)를 “보상하다”, “갚아주시다”는 뜻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한편 “온전케 하다”, “이루다”, “성취하다”, “끝내다”로 번역하는 것 역시 문맥상 적절해 보입니다. 앞선 설명처럼 7절의 전체적 분위기는 시인이 겪고 있는 난관과 어려움과 혼란스런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내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환난과 난관과 고난과 힘든 일들을 마침내 끝내주시는 종결자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온갖 역경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의 유익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게 된다는 고백입니다. 본문은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가마르, גמר) 하나님께로다.”라고 고백하는 시 57:2과 같은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합니다. 빌 1:6에서처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루신다”(ἐπιτελειν)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결론]
위의 경우를 보면서 우리는 성경번역이 때론 왜 서로 다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번역이 좀 더 큰 틀 안에서 본문의 의미를 더 잘 나타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깊이 곱씹기 시작하면 우리는 커다란 영적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독서(spiritual reading,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입니다.
[램브란트의 "성경을 읽는 예언자 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