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있을 때 잘하세요!”

 

오늘 아침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 이런 조크를 던지셨습니다.

 

모세는 그의 유명한 기도문에서 인생의 연한은 대충 70~80년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그런데 이렇게 말씀한 모세 자신은 120살이나 살았습니다. 이거 너무 치사한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은 7,80년 정도만 살라고 해놓고 자기는 40여년을 더 살았으니, 이거 원 참,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군요!”

 

듣고 보니 모세님이 너무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중들도 한바탕 웃었지만 그들 역시 왜 모세님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자기는 그대로 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한 모세의 설교에 기분이 좀 상했을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한편 청중들은 모세가 인생의 연한에 대해 말한 7,80년 정도가 지금 그 정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딱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들자 약간의 놀람을 금할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모세 당시의 평균 연령이 120년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모세는 앞을 내다보고 예언자처럼 인간 수명이 평균 7,80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하고 놀랐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놀라움은 설교와 성경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에게만 국한된 현상이지만!)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조크를 던진 목사님도 그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청중들도 모두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성경해석 한 수(!)를 알려드리고 싶어 급하게 몇 자 적어 보는 것입니다.

 

먼저 모세의 기도문으로 알려진 시편 90장은 말 그대로 입니다. 그것도 히브리 시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시 습관을 알게 되면 그 말(7,80)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먼저 히브리인들의 작시 관습을 알면 좋습니다. 먼저 히브리인들은 시행(詩行) 한 줄을 쓸 때 보통 두 소절(小節)을 사용합니다. 달리 말해 두 소절이 하나의 시행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우리는 보통 나는 배신당했어!”라고 말하겠지만 히브리인들에게 이것을 시로 표현하라면, 분명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나를 못 믿었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히브리 시 형태로 레이아웃하자면 이렇습니다.

 

            “나는 너를 믿었는데

                     너는 나를 못 믿었지

 

즉 첫 소절과 두 번째 소절이 함께 부딪히면 배신이라는 불꽃이 튄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인들이 숫자를 사용하여 시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경우 모세의 기도문을 사용하면 아래와 같이 배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보다시피 첫 소절에서는 70년을, 두 번째 소절에서는 80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70년이란 신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충분하게 산 햇수를 가리킵니다. 70이 온전 숫자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두 번째 소절에서 80이란 것 역시 사람이 신이 정해준 삶을 살고 거기서 플러스로 조금 더 사는 듯하여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7080년이란 숫자는 생물학적 날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를 통한 시적 표현(poetic numerical expression)입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의 정해주신 인생이라는 삶을 살고, 때론 플러스마이너스로 덜 사는 더 사는 듯해도, 수고하는 삶이요 많은 경우 슬픔이 많은 삶이요, 게다가 흐르는 물처럼, 쏜 살 같이 후딱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날아간다는 말은 내가 잔디밭에 앉아 있던 작은 새를 쳐다보고 있다가 누군가 나를 불러서 잠깐 뒤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새를 보았는데, 그 자리에 새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나의 집중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새(인생, 삶)가 날아갔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와 이사야 2:22; 시편 90:10,12; 시편 103:14-16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이 뭐던가요?

그 코에 호흡이 있는 존재가 아니겠어요.

마치 어디론가 날아가려는

새의 날개 위에

있는 것과 같이 말이죠.

 

정처 없는 나그네처럼

인생 또한 그렇게 지나가고

사라질 겁니다.

 

완전히 가버리지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말입니다." (Thomas Boston, 1676-1732)

   - Human Nature in its Fourfold State 중에서-

 

이제 인생사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있을 때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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