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2 01:23
“수요일 즈음 갈릴리에서 그분을 뵈오리라!”
마태 28:1-10
예수 부활을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들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서마다 예수부활에 관한 서로 다른 기사들을 싣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에는 누구도 부활하신 예수를 보지 못한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16:8). 누가복음에는 부활하신 예수가 그날 오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24:13-35). 한편 요한복음은 그 날 저녁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셨다고 말합니다(20:19-23). 그러나 마태복음에 따르면 11명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여러 날이 지나서야 그것도 예루살렘에 아닌 저 멀리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11제자들은 빈 무덤에 가지 못했습니다. 부활절 아침을 경험한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니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그녀들은 예수의 부활을 전한 최초의 설교자들이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이 여기에 계시지 않고 갈릴리로 가신다.”는 사실을 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한번은 천사로부터 다른 한번은 예수님으로부터 말입니다. 갈릴리에 가야 그곳에서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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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28킬로 떨어진 지역입니다. 그 옛날에 지도를 들고 걸어서 갈릴리를 찾아서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가다가 먹어야 하고, 좀 쉬어야 하고, 잠을 자야합니다. 이렇게 해서 갈릴리에 “만남의 장소”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이삼일 길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 갈릴리까지 걸어가야 한다면 적어도 늦은 수요일 즈음에나 갈릴리에 도착할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날이 수요일이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16-17절).
본문에 따르면 이 광경은 예수께서 위대한 지상명령을 주셨을 때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마태복음은 끝을 맺습니다.
마태복음의 부활절 기록에 따르면, 다락방도 없고. 엠마오로 가는 길도 없고, 해변에서 떡을 떼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11명의 제자들은 갈릴리로 올라가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마침내 예수를 보았습니다. 예수를 경배했습니다. “예배!”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의심했습니다. “의심!” 어떤 이들이라는 것은 한명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1명만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열한명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제자들은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예배와 의심”이 함께 공존하는 부활절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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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려면 갈릴리까지 가야 합니다! 적어도 수요일까지 삼일 길은 족히 걸어가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수요일은 상징입니다! 갈릴리까지 가야하는 길, 그 길의 끝자락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거기서 자기를 찾아올 제자들을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일요일은 부활을 기뻐하는 날이지만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날은 수요일입니다. 갈릴리와 수요일은 부활하신 예수가 계신 장소이며 시간입니다. 갈릴리로 가는 길은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 대한 비유입니다. 수요일까지의 날들은 빈 무덤으로 가는 또 다른 발걸음입니다. 그러나 갈릴리까지 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기분 좋게 출발한 일요일이지만 거의 기진맥진해서 도착하는 수요일 저녁일지도 모릅니다.
· 이를 갈 정도로 힘든 일들이 싸여 있는 우리의 일터.
· 원한과 응어리진 마음으로 힘든 날들.
· 휴식과 평안과 고요함이 아득하게 먼 것처럼 보일 때.
· 식탁에서 아무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을 때.
· 용서하기 아주 힘들 때.
· 시간이 멈춰선 것처럼 보일 때.
· 잔인한 외로움이 다가올 때.
· 밝은 날이라 해도 짊어진 짐이 가볍지 않을 때.
· 침울한 무드가 밝아지지도 않고, 여정은 가볍지 않을 때.
· 암울한 기사들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
· 지구상에 어디선가 폭탄 테러가 생길 때
· 난민들은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고 있을 때.
· 나라들마다 폭탄의 크기를 자랑할 때.
· 초강대국들은 미사일과 군사력의 위용을 과시할 때.
· 종합검진 후 의사면담이 있는 날.
· 치매로 고생하시는 부모를 만나러 가는 날.
·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날, 학교에서 쫓겨나는 날.
· 졸업을 했지만 직장은 아득하게 보이는 날.
이 모든 경우가 갈릴리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일들입니다. 수요일까지 가면서 겪어야 하는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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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부활절 일요일은 나팔을 불고 친숙한 찬송을 부르고 부활절 달걀을 나눠먹으며 부활의 기쁨을 환호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외치는 날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저 수요일에 저만치 저 멀리 갈릴릴 산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믿고 희망합니다. 물론 이 부활주일 아침에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수요일에 예수님을 뵙기를 바랍니다.
· 나라들이 소란하고,
· 세상의 지도자들이 시끄럽게 소리치며 떠들썩할 때,
· 죽음이 결코 물러가지 않을 때,
· 사랑하기가 참으로 어렵고 힘들 때,
· 희망을 찾기가 힘들 때,
· 근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훨씬 쉬울 때,
· 내 옛 습관과 악한 습관이 내게 대해 승리하는 듯 보이는 날에,
이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 주님, 저를 기다려주세요. 거기서 저를 기다려 주세요. 예수님, 그곳에서 저를 만나주세요.” 그런데 그 날이 무슨 요일이죠? 어느 날이죠? 수요일입니다! 예수님.
최초의 부활절 설교자들이었던 그녀들이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라고. "그러나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갈릴리에 가 계십니다!"라고.
우리 모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날 것입니다. 그가 거기서 여러분과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우리 함께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시다. 그분을 만날 때까지 우리 함께 격려하며 걸어갑시다. We will meet Him there at Wednesday! 이렇게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오 주님, 저희를 기다려주세요!"라고
"시민 농장의 일출" 수원 당수동 시민농장, 사진 이범의
마가복음 16장이 8절로 끝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때 엄청 큰 충격으로 와 닿았습니다. 마가가 왜 그런식으로 끝을 맺었을까 몇일이나 생각했었지요. 이 글을 읽고보니 7절에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말씀이 보이네요. 마가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공백으로 남겨둠으로 우리 각자가 그날 갈릴리에서 부활의 주 예수님을 만나는 제자들이 되라는 메세지를 던진 것으로 이해해봅니다~ 영감있는 에세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