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0 20:37
“성령은 자기 자신에게로 굽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기꺼이 가장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해, 성령으로 가득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령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초점은 성령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는 오로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가득한 것과 성령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끼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처럼 느낀다고 성령으로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거꾸로, 성령으로 가득한 것처럼 느끼지 않으면서도 실제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가득하기 위해서 얼굴과 심령에 광채가 나고 어둠 속 횃불처럼 불타올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하기 위해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되고, 항상 ‘할렐루야’를 외치고, 큰 소리로 방언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나대고 뽐내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간혹 있습니다. 간혹 입만 열면 성령에 대해 말하고, 자기 혼자 성령을 독점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허풍쟁이 부흥사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는 성령이 성령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심할 경우에는 성령을 강조하면서 모든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결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와 현존을 가장 잘 경험하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면 바로 오직 예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는 곳과 때입니다. 그때 그곳에서 여러분은 성령의 임재와 충만한 현존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류호준,「생명의 말씀」중에서
천리포 수목원에서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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