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02 23:28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주님도 역시 성만찬을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것의 하나로 베풀려고 하셨다. 즉 이것은 순결하고 거룩한 삶과 사랑, 평화, 화목을 실천하도록 우리를 일깨우고 각성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성만찬에서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전해주셔서 우리와 완전히 하나가 되시고 우리도 그와 하나가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오직 한 몸만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 모두를 그 몸에 참여케 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역시 이러한 참여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되어야만 한다.
성만찬에서 제시되는 떡은 이 연합을 나타내고 있다. 떡은 곡식의 수많은 알갱이들이 서로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섞어져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한마음으로 완전히 일치하여 서로 하나가 되고 결합됨으로써 그 어떤 불화나 분열이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것(고전 10:16~17)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낫겠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만일 우리가 다음과 같은 생각을 마음에 기억하고 새긴다면 성만찬으로부터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형제라도 상하게 하고 멸시하고 학대하고 어떤 방식으로든지 실족케 하면 그것은 동시에 우리의 악행으로 그리스도를 상하게 하고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형제와 불화하면 그것은 동시에 그리스도와 불화하는 것이며, 형제들은 우리 몸의 지체이므로 마치 자신의 몸을 보살피듯이 우리 형제들의 몸을 보살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이 고통을 느끼게 되면 그 고통이 몸의 다른 부분으로 전해지는 것처럼 형제가 어떤 악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면 그를 향해 깊은 동정심을 느껴야만 한다. 따라서 어거스틴이 이러한 성례를 종종 ‘사랑의 끈’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