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04 11:51
Twitter(@danielryou)에 올렸던 짧은 글들
[1] 예배가 '감정의 고양'(高揚, emotional uplift)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경험이지 신앙의 본질은 아닐 것입니다. 달리 말해 장미꽃으로 화사하게 치장한 십자가이겠지요.
[2] 지구가 단단히 열 받았나보다. 도대체 왜 인간들은 지구를 열 받게 하는가? 열대우림의 파괴, 이산화탄소의 과다배출, 사막화, 오존층 파괴, 무개념 개발, 군비경쟁, 무엇보다 인간의 탐욕 등이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구는 지금 고열을 앓고 있다.
[3] "사실(fact)은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 경찰청장 후보자의 답변을 들으면서
[4] 구약의 예언자들의 꿈꾸었던 꿈은 '정의'와 '평화'가 포옹하는 날이 도래하는 것이었습니다(사 11:4-9).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정의로운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
[5] 물리적으로 나는 서울과 천안 사이 어디엔가 있는 사람입니다. 나의 정체성이 뭐냐고요? "사이에 있는 사람"(in Between), 혹은 "길 위에 있는 사람"(on the Road)입니다. 세상 속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의 정체성일 수도 있겠지요.
[6] 요즈음 국회 인사청문회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기억'이다. 공직후보자들 가운데 치매환자들이 많은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단골메뉴이다. 크리스천들 가운데도 하나님과의 약속(언약)을 기억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나님의 청문회!
[7] 거짓말은 일단 시작되면 그 속도는 관성에 법칙에 따라 자체적인 운동력을 갖기 시작한다.
[8]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에는 성문법 보다 더 상위법인 불문법이 있습니다. "국민정서법"이라 불리는 독특한 여론법입니다. 문제는 대중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발이 없는 말이 천리를 가던 시대가 아니라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초강력 '군마'입니다.
[9]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요구되는 상은 도덕적 성자상이 아니라 도덕적 일관성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10] 우연찮게 연구실 창문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주 가까운 수풀 언덕 창공에 고추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유유하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신기한 풍경입니다. 가을이 저만치 오고 있다는 소식인지요?
[11] "그리스도의 재림은 너무도 환상적이고, 너무도 꿈과 같아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희망을 꿈꾸지 않습니다." - 프레더릭 뷰크너
[12] 교만은 낙타의 눈과 같아 항상 눈을 내리깔고 내려다봅니다. 따라서 교만한 사람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13] "나를 따르라" - 이 두 마디는 기독교를 집약해 놓은 말입니다. 기독교는 신념들의 체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삶의 방식이며 걸어가는 길(Wa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