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지붕위의 바이올린] 에 대한 감상문입니다...

사랑하는 스승님! 방학내내 건강하십시요! ^^

 

 

"지붕위의 바이올린"(영화)을 보고

 

20091163 박정진

 

성문서 시험을 치고 난 후, 드디어 이 영화를 보았다. 그 전에는 시험 준비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추천과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의 권유로 드디어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영화를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영화는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의 유대인 마을, 아나테프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록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전통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었다. 주인공인 테비에는 우유가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다소 수다스러운 아내와 다섯 명의 딸들이 있었다.

 

영화는 자연의 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선율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등장하여 영화의 서막을 연다. 자신의 마을 사람 모두가 "지붕위의 바이올린 연주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과 대답을 던진다. 첫 번째 질문은, '왜 이들이 위험하게 지붕 위에 올라가 연주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 곳 '아나테프카가 자신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한다. 두 번째 질문은, '위험한 지붕 위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전통"이라고 간략하게 대답한다.

 

주인공은 영화의 주제인 전통과 변화 중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로 나오고 있다. 즉 영화는 아나테스카의 유대인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선조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따르며 조화를 이루어 살아간다는 점을 설명하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에서 유대인의 삶은 지붕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아름다운 연주를 하려 애쓰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처럼 불안정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영화의 서두에 뮤지컬처럼 등장하는 노래를 통하여 이 '전통'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이 있으며, 어머니에게는 어머니의 역할이, 아들에게는 아들의 역할이, 딸에게는 딸로서의 역할이 전통이라는 가두리 안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전통이 "지붕 위의 바이올린 반주자"와 같은 불안정한 삶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언급한다.

 

영화 안에서 주인공 테비에는 삶의 안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아들도 없이 딸 다섯에 가난의 축복 등이 바로 그의 현실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심시하시면, 자신을 골탕먹일 생각만 하시는 것 아닌가"하는 독백을 한다. 즉 그는 이 가난이라는 자신의 현 주소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키에브에서 온 퍼칙. 그는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테비에의 딸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테비에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는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는 마텔과 사이텔과의 결혼식에서 전통에 대항한다. 마을 사람들 모두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모두들 이에 동조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테비에의 둘째 딸인 호델에게 청혼을 한다. 퍼칙과 호델은 서로만의 약혼을 하고, 이 사실을 테비에에게 알린다. 퍼칙은 허락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보하듯이 언급한다. 그들은 축복을 해달라고 했지만, 테비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큰 딸로 인해 전통의 실오라기를 풀었더니 어디까지 풀리는걸까' 하는 독백으로 후회를 표현한다. 사랑 때문에 결혼하겠다는 그들의 요청 속에는 '전통'에 대한 고민과 배려는 없다. 그러나 테비에는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만다.

 

 

큰 딸 사이텔. 돈이 많은 푸줏간 주인 라자 울프와 결혼시키려 한다. 그는 돈이 많은 부자였다. 그러나 큰 딸 사이텔은 이를 거절한다. 그녀는 따로 결혼하기로 맹세한 상대, 재단사 마텔 캄조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결정으로 하는 결혼이 아닌, 심지어 자기 자신들과 서로 맹세까지 하는 것은 분명히 전통의 무너짐이었다. 전통을 깨는 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은 분명 테비에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통은 어디에?" 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딸의 간청을 받아들인다.

 

막내딸 하바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피엣카에게 매력을 느낀다. 둘은 테비에에게 자신들의 교제 상태를 알리지만, 이방인과의 교제에 대해서 테비에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하바는 결혼을 하겠다고 하지만, 테비에는 종교까지 버리면서까지 하는 결혼에 대해서는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바와 피엣카는 가출을 하게 되고, 이를 수소문하는 끝에 테비에의 아내는 러시아 정교의 신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는 하바와 피엣카가 결혼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내를 통헤 이 소식을 들은 테비에는 또 한번의 절망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한다. 전통을 버리고 떠나는 딸의 장면이 드러난다. 다시 딸 하바와 만나게 되지만, 테비에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즉 자신들을 받아들여달라는 요청에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을에는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아나테프카를 떠나라는 국가적 명령이 내려오게 된 것이다. 테비에는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라고 그럴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그와 동족들의 전통과 그들의 기억이 있는 곳을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들었던 이웃들과의 이별의 슬픔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면 속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가는 길을 따라다니며 연주를 계속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잔잔한 분위기와 영화의 뮤지컬적인 요소들은 영화의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영화는 전통과 변화라는 패러다임의 충돌 속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예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나의 사고는 다시 돌아간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주인공이 던졌던 대사가 생각이 났던 것이다.

"마을 사람 모두는 모두 지붕위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 모두는 바로 우리 자신들일 것이다. 왜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주인공이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라고 답했듯이, 우리의 바이올린 연주는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는 바로 이 세상이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이 세상 속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은 경사진 지붕과 같이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불안정한 곳이다. 어느 곳에도 우리가 기댈만한 것은 없는 것이 이 세상이며,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면서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위험한 지붕 위에서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인공은 "전통"이라고 요약한다. 전통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는 연주자의 모습은 하나님을 향해 중심을 잡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 전통이 많은 변화와 도전을 받게 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도전에 주인공이 갈등하고 함께 동화되고 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똑바로 걷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는 우리를 유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며, 또 죄의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우리를 비웃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 걷지 않고, 함께 서지 않으며, 함께 앉지 않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지붕위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또 하나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균형을 잡고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연주를 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강렬하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듯 하다. 가족들과의 이별, 그리고 정든 이웃들과의 이별, 그리고 아름다운 기억이 있는 고향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연주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많은 바람과 파도가 있는 우리의 여정이지만, 그 여정 속에 아름다운 연주가 있어야 한다는 이 메시지는 우리의 인생이 정말 예술이구나라는 생각을 저절로 가능케 한다.

 

우리는 이처럼 '안정'이 아닌, '불안정'한 삶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또 어떤 슬픔과 어려움들이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붕 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삶 속에서 주어지는 많은 유혹들과 갈등들이 우리로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광야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물입니다', 식량입니다', '집입니다', '돈, 명예, 권력, 인맥 등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살아갑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지붕 위'와 같은 세상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바이올린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오늘을 참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여기고 기쁨으로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냥 하나의 영화였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수업시간에 스승님과 함께 나누었던 많은 담소들이 생각이 났다. 가슴을 뜨겁게 했던 시간들, 그리고 행여 볼까봐 눈물을 훔쳤던 시간들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 것이다. 이 인생의 광야 속에서 "사람이 무엇을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살아간다라고 고백하는 A+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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