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에스겔서 강론(8): “새로운 성전”

2010.04.26 01:06

류호준 조회 수:10625

[8]

“새로운 성전”

에스겔 43:1-12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6 성전에서 내게 하는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더라. 7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에 영원히 있을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들의 왕들이 음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망시켰거니와 9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거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 가운데에 영원히 살리라. 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묵시론적 성전

 

에스겔서는 처음 시작하던 식으로 끝을 맺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환상으로 시작하였고 동일한 환상으로 끝을 맺고 있다는 말입니다. 에스겔서 1장에서 예언자 에스겔은 하나님을 보았던 첫 번째 환상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곳과 그 후에 이어지는 환상들을 통해 포로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까이 계시는 분이며, 심지어 그들이 포로로 잡혀 먼 이국에 있다 하더라도 그들 곁에 가까이 계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마지막 환상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회복된 공동체 안에 있는 자신의 성전으로 돌아오고 계시는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본장에 기술되어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귀환은 그 영광이 떠났던 사건을 담고 있는 에스겔의 두 번째 주요 환상(8-11장)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겔 29:17-21에 기록된 짧은 내용을 제외하고는, 이 최종적 환상은 구체적인 연대가 기록된 에스겔의 마지막 말씀들입니다. 주전 573년에 야웨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재건된 성전 장면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14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하늘의 안내자를 보내어 새로운 성전의 여러 방들을 구경시켜 주십니다. 본 단락에서 에스겔은 자기가 본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선 두 장들(38-39장)처럼, 본 단락 역시 묵시론적 스타일의 글입니다. 서로가 평화롭게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지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새 공동체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국으로 귀환한 포로민들은 새로운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주전 516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학적 디자인과 규격들은 지금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고 있는 성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환상이 보여주고 있는 핵심은 이상적인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고, 그들이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상적인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언자를 비난합니다. 공동체가 직면한 사회적 이슈들과 그들에게 부과된 도덕적 요구들에 대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의로운 삶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께 올바른 예배를 드리는 일로 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전보다 더 크신 분

 

이 환상의 절정은 중심부에 있습니다(43:1-12). 여기서 에스겔은 성전에 가득한 야웨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이전에 안내자는 에스겔에게 성전의 건축학적 특성들과 모양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에 예언자는 적절한 예배가 드려지기 위해 어떤 절차들이 요구되는지에 관해 듣게 됩니다.

 

아마 현대의 독자들은 천사가 알려주고 있는 자세한 내역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에스겔을 안내하던 천사는 성전 바깥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건축학적 디자인들 가리켜 보여 주었습니다. 너비와 높이 등 건축물의 규격까지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오직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안 뜰로 인도합니다. 제사에 사용되는 기구들에게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 후에 안내자는 예언자를 성소로 인도합니다. 이곳에서 예언자는 성전 지역 전체를 살피게 됩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성전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이 우리의 흥미를 유발하거나 끌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겔과 같은 히브리인 제사장의 사역을 이해하게 되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성전을 관람하고 있던 에스겔은 매우 흥미진진하였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에스겔은 제사장 사역에서 소외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새 성전을 전체 돌아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 되었겠습니까?

 

동쪽 대문에 선 에스겔은 야웨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때 야웨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성전은 자기 집이었고 이 집에서 자기 백성들과 영원히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새롭게 구성되는 공동체는 다시는 우상숭배나 부도덕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43:6-9).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의 환상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포로민들에게 다시 돌아오신다는 사실을 기술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포로민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의 죄들에서 벗어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성전의 법’을 알아야했습니다. 즉 성전과 그 주변의 모든 지역들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12절). 야웨께서 자기를 예배하고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백성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43:7-12).

 

이 성전 환상이 우리에게 어떤 가능한 상관성이 있겠습니까? 이 환상은 적어도 포로민들에게 예루살렘에로의 귀환을 소망하게 하였으며 참된 예배의 회복을 꿈꾸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환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성취되었고 또한 교회라는 새로운 크리스천 공동체를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전이 대표하고 있는 영적 실체들을 구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현존과 임재를 뜻하는 예수님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친히 육체를 입고 함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고대의 건물은 이제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6)고 하셨습니다. 다시금 자신의 몸을 가리키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라. 내가 삼일 만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리라”(요한 2:19)

 

상징적 성전이신 예수는 야웨께서 친히 육체 가운데 현존하신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겨 내렸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행위는 이 건물이 무효화가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희생제사가 실제로 도래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이 대표하고 있었던 모든 것이 메시아를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고후 4:6; 참조 겔 43:5)

 

살과 피로 지어진 성전들

 

그리스도가 구약의 제사제도를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것이라면, 각 개인의 크리스천들도 하나님의 성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언자의 말씀들이 실현되었음을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에스겔의 용어를 사용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야웨께서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 37:26b,27). 바울은 이 에스겔의 진술을 받아들어 다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6)

 

바울이 ‘몸’이라 할 때, 그 몸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그의 백성은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그 건물에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우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엡 2:20-22). 에스겔의 궁극적인 희망은 돌과 나무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라는 성전이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에스겔은 사회적 정의나 도덕적 경건성보다 ‘경건한 예배’의 행위들 강조하였습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십니까?

 

2.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께서 하신 대화 내용(요 4장)이 에스겔의 환상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에 덧붙이는 요소가 있습니까?

 

3. 계시록과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전 환상의 성취에 덧붙여 주는 요소가 있습니까?(계 21장을 보시오)

 

4. 크리스천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의미입니까? 베드로 사도의 말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벧전 2:5).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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