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십자가에 대한 오해

류호영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십자가는 물론 하나님의 인간 구속(救贖, redemption)의 방식이었다. 달리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구출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한 방식이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만약에 우리가 십자가를 단순히 우리의 죄와 잘못에 대한 면죄부로 취급해 버린다면, 우리의 죄와 잘못은 영속화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우리의 허물을 십자가에 미뤄놓고 여전히 우리의 잘못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 죄에 대한 속죄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우리 인간들이 함께 살자고 자신의 사랑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에게 행한 폭력의 결과이며 동시에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는 끔찍한 폭력성에 대한 폭로이다. 전통적으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 자신의 공의를 통과한 사건으로 본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많은 신학자들과 지식인들의 고민이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적인 추론으로 볼 때 아마도 최선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하나님 자신의 공의를 우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공의를 통과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십자가라는 폭력적인 희생 사건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십자가 사건이 주는 교훈 중에 하나는 사랑은 언제나 공의가 먼저 세워진 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맹목적인 사랑이요 인간을 버릇없게 망쳐버리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즉 사랑은 언제나 바르게 시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은 사랑은 망하게 하는 잘못된 사랑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결책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모두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보다는 더 우선된 관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으며,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 어디서도 이렇게 십자가의 의미를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다, 즉 십자가는 우리의 속죄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 사랑에 대한 인간의 반역을 대조하여 말할 뿐이지 결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를 대조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공의는 오직 인간의 반역과 대조를 이룰 뿐이다.

 

이러한 대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이 사랑에 대한 인간의 무지 혹은 반항이 성경의 근본적인 이슈이며, 이런 점에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폭력적인 저항의 대립의 결과이다. 요한일서 2:15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만약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한다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도다.” 여기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본래적이며 우리의 세상사랑은 본래적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세상사랑은 대립 개념으로서, 우리의 세상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거부요 반항이라는 점이다. 분명 우리의 하나님 사랑에 대한 거부와 반항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성경의 큰 차원에서 볼 때,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간의 유한한 폭력이 맞닥뜨린 사건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폭력을 무력으로 힘으로 제압하여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한한 폭력을 무한한 사랑으로 모두 받아 소진(消盡)시킨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죄와 악을 이기시는 방식이다. 이 점을 골로새서 이렇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2:15). 만약 십자가가 이렇게 양면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이 골로새서 구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십자가가 세상 왕국과 이 왕국을 배후에서 지배하는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십자가는 하나님이 자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사탄과 인간의 유한한 폭력을 이기신 결과이다.

 

이 점을 보다 쉽게 이해해보자. 만약 난공불락의 강력한 성인 레슬러와 유약한 어린아이가 싸웠다고 하자. 어린아이는 끊임없이 레슬러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레슬러는 전혀 대항하지 않고 그 모든 주먹을 모두 맞아줬다고 하자.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아이는 점차 지쳐갔고 결국 나가 자빠져 싸움을 포기하고 만다. 레슬러는 어린아이의 폭력적인 주먹을 모두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결국 어린아이의 폭력을 모두 소진시킨 것이다. 레슬러는 그의 강철같은 몸으로 어린아이의 솜방망이 주먹이라는 폭력을 모두 소진시킨 것이다. 큰 사랑이 작은 폭력을 이긴 것이다. 이 유비에서 중요한 것은 레슬러의 비폭력적인 수용이 어린아이의 폭력적인 공격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인간의 유한한 폭력에 대한 좋은 유비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비폭력은 인간의 폭력을 절대적으로 상회한다는 점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은 하나님에 대해 퍼부은 인간의 폭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죽기까지 인간의 폭력을 다 받아내신 끝없은 사랑이 결국 인간 유한한 폭력을 모두 소진시켰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의미이다. 부활은 사랑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과 새 사람을 탄생시킨 새 창조의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그 안에 있는 자들은 누구든지 새 삶을 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부활의 참된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꼭 붙잡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확신하기에 한 분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으니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그는 새 창조의 일원이니라”(고후5:14, 17 개인사역).

 

Grassi lake in Canmore Near Banff, Canada (사진 최성은 목사, 밴프한인장로교회)

Grassi lake in Canmor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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