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의 백성의 거룩함의 의미

류호영 교수(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하나님은 우주를 자신의 성전으로 창조하셨다. 즉 자신이 거처하시는 장소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은 홀로 계셨고, 창조와 함께 자신의 현존을 온 피조 세계로 확장하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고 창조와 함께 하나님은 자신의 현존을 땅에까지 확장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늘은 결코 하나님이 계신 정적인 의미의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하늘은 피조 인간이 범접할 수 없으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그러나 성경은 놀랍게도 이러한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한다(cf. 주의 기도 마6:9). 우리가 범접할 수 없고 조정할 수 없는 그 분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땅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며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호하시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이 땅에 인류를 내시고 이 땅의 인류를 자신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일평생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은유를 사용한다면 말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은유를 사용한다면 말이다) 이라는 인식이 어떤 시점에서든 생겨나야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러한 인식이 소위 말하는 구원에 대한 확신보다도 더 성경적인 중요성을 띤다. 왜냐하면 성경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명령하거나 청원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를 이 땅에 내셨다고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3:16). 즉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게 창조된 세계와 이 안에 살게 하신 인류를 너무도 사랑하셨기에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서 파괴되고 망가지고 세상과 인류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고 새롭게 창조하시기를 원하셨다는 뜻이다.

 

중요한 점은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요 자신의 나라 백성들인 우리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다(11:44, 45; 19:2; 20:7; 벧전1:16; cf. 4:8)는 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거룩하라는 말씀이 대개의 경우 개인적인 성결 혹은 도덕적인 차원의 깨끗함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선하게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하신 피조 세계와 이 땅의 인류라는 맥락에서 먼저 이해되어야 할 말씀이다. 한 마디로 거룩함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세상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새 창조의 역사를 통해 새로워진 세상이 어떻게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또한 궁극적으로 인류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 영원히 하나님께 함께 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신적 규범이요 처방전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거룩함은 모든 덕성들이 그렇듯이 하나님에게 내재된 혹은 우리에게 내재된 성품을 가리키지 않는다. 성경에서 일차적으로 하나님께 귀속된 거룩함은 하나님은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고대 근동지역의 거짓 신들과 절대적으로 다르고 구별된 참 신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신들은 기본적으로 힘을 특징으로 하며 또한 무자비하고 변덕스러워서 인간이 달래야 할 섬김의 대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또한 일상적으로 잘 알고 있는 신관(神觀)이다. 그러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여호와(cf. 3:15-16)는 절대적으로 독특한 하나님이시다. 한 마디로 절대적으로 주권적이시며, 언제나 은혜로우시고, 약속에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cf. 34:6). 이 분은 다른 거짓 신들과 달리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으신 분이지만 (cf. 17:25), 우리와 함께 살면서 교제하기 위해서 이 땅과 이 땅의 인류를 창조하셨고 마침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으며(cf. 요 1:14) 현재는 성령으로 우리 중에 계시는 분이다(cf. 고전3:16).

 

끝으로 거룩함이 우리에게 지닌 실천적인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가짜 신들과 달리 이렇게 절대적으로 또한 배타적으로 독특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가짜 신들을 섬겨 사는 자들과 절대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점이다. 거룩함의 근본은 다름이다. 완전히 다른 진짜 유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또는 우리의 왕으로 알고 산다면 진짜 달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철저히 다른 신인 나를 알기에 너희 역시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을 추구하거나 숭상하거나 행사하며 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직 우리는 사랑을 근본 삶의 원리와 실천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세상 즉 썩어질 육신이 원하는 것,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는 것, 생에서 이룬 업적들에 대한 자랑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2:16 사역).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먹고 사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음에서 온전히 드러나고 실현되었다. 이 사랑이 인간의 참 양식이요, 이것이 참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이다(cf. 요6:54-56).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먹고 산다면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갖고 사는 것이다

 

Kaycee, Wyoming,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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