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세월호와 한국교회호

- 현장 매뉴얼의 화석화 -

 

I

 

군대 용어로 FM이란 것이 있습니다. FMField Manual의 약어로 야전 교본”(野戰 敎本)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군인들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서 필수적인 교과서입니다. 군대가 아니더라도 일반사회에서도 어떤 일들을 실제현장에서 시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야할 규칙들과 가이드라인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FM입니다. 이것들을 따라 하는 것을 보통 “FM대로 한다.” 라고 말합니다. 편법이나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원칙대로 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군대의 장교들은 야전교본을 숙지해야 합니다. 그 안에는 훈련 및 전투수칙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쟁이나 전투에 준하는 위급상황에 직면하면 지휘관은 야전교본이 가르쳐준 대로 작전을 시행해야 합니다. 평소에 부단히 야전교본을 숙지하고,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 실제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을 상상하여 그것을 정확하게 실행에 옮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숙지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단순반복해서 암기하는 제일 좋습니다. 그 다음엔 다양한 규칙들과 가이드라인이 서로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고 숙지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상황을 가상하여 연습하는 것입니다. 연습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는 훈련은 결코 훈련일 수 없습니다. 이런 고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몸과 마음은 갑작스런 특정한 상황에 대해서조차도 자동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완벽한 처리를 일구어 냅니다. 이렇게 해서 야전 교본으로 잘 훈련된 사람들은 일명 2의 본성”(second nature)을 갖게 됩니다. 몸에 깊숙이 배인 자연스런 반응행동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II

 

이번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최상의 샘플 중에 하나입니다. 야전교본(FM)을 우습게 생각하는 풍조입니다. 잔머리 굴리기에 급급한 시대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초학문보다는 응용학문에 몰입하는 풍조나 단기간 내에 가시적 성과와 실적을 중요시하는 풍토에선 기본과 기초를 가볍게 여기거나 우습게 여기게 됩니다. 교과서보다 전과나 수련장을 중요시하며, 학교보다 학원을 더 높게 평가하는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사건은 어찌 보면 당연한 비극적 결말이기도 합니다. 아직 터지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도 우리나라 어디선가 수많은 활화산들이 활주로에 이륙을 기다리는 비행기들처럼 줄줄이 폭발의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전망일까요?

 

세월호의 선사(船社)나 선주, 선장과 항해사와 조타수와 갑판장과 기관사와 일반 승무원들이 제대로 매뉴얼을 몸에 배이도록 그렇게 익혔을까? 2의 본성이 되어 자동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할 정도로 매뉴얼을 습득했을까? 머리에서 지시한 것이 손과 발까지 전광석화처럼 전달되어 행동으로 옮겨졌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이번 사건과 관련된 해양경찰청과 해양수산부 사람들 역시 긴급 상황에 대해 야전교본대로 침착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궁급합니다. 한국해운조합과 같은 유착 관련 단체의 사람들에 대해선 말하기조차 불쾌하고 싫습니다.

 

III

 

중세 서구사회의 흐름을 전복적으로 바꾸어놓게 된 혁명적 운동을 보통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이라 합니다. 보통 문예부흥”(文藝復興)이라고 합니다.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거듭남”(re-birth)이란 뜻입니다. 기독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중생”(重生)입니다. 르네상스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습니다. “Ad Fontes”라는 라틴어 문구입니다. 문자적으로 수원(水原)들로 올라가라는 뜻입니다. 이차적인 것들이 아니라 일차적이고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공부하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구호입니다.

 

다른 한편 르네상스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중세의 혁명적 운동이 있습니다.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Reformation) 운동입니다. 이것 역시 오랜 관행과 전통에 쪄들은 당시 로마 교회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한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개혁의 핵심 되는 구호도 ”Ad Fontes”이었습니다. 달리 말해 교회는 관행과 전통이 아니라 신앙의 기본과 기초가 되는 성경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성경이 크리스천들의 신앙과 삶에 유일한 규범이라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 천주교와는 달리 개신교는 성경을 신앙의 수원지(水源池)”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인들에겐 성경이야말로 유일한 야전교본(FM)인 셈입니다.

 

그러나 현금에 일어나고 있는 몇몇 교회들과 교단단체의 도덕적 침몰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지금 한국교회호가 울돌목 해협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만 살아남겠다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면서 하선하는 그들의 선장들과 승무원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보면서, 조난당하여 난파하고 있는 한국교회호()”에서 현장 매뉴얼(FM)인 성경이 얼마나 철저하게 무시되고 화석화(化石化)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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