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가룟 유다의 불행과 사도직(使徒職)"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투표에 의한다면 아마 가룟 유다가 뽑힐 것 같다. 그는 가장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가 그런 수치와 오명을 쓰게 된 것은 단순히 돈에 눈이 멀어 자기의 스승을 팔아먹은 배신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원인 제공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결론은 그다지 설득력이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배반으로 말하자면 어디 유다만이 예수의 배반자인가? 베드로는 아니던가? 유다는 평소에 호언장담하면서 예수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하던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어떠했던가? 주위 사람 모두가 예수를 부인하고 떠난다 하더라도 자기는 끝까지 예수 곁을 지키겠노라고 큰 소리 치던 인간이 아닌가? 그리고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를 부인할 뿐 아니라 저주까지 했다. 그런데 왜 그는 유다와는 다른 종류의 배반자로 분류되는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궁극적으로 베드로는 승자이고 유다는 패자이기 때문일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혈관 속에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지 않는가? 이것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위선자다. 그런데 왜 유다는 그렇게 천추(千秋)에 길이 남는 악독한 배신자로 각인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죽었기 때문에 자기를 변호할 아무런 힘도 없기 때문일까? 어딘가 그를 위한 변호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유다의 변호인이 되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을 위한 변호인이 되는 것을 의미 할 것이지만 말이다.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27:3-10), 유다는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 깊이 후회하였으며, 예수를 팔아 번 돈인 은 30냥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앞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러자 그들은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동묘지를 사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행전 기록에 의하면 그 밭을 구입한 사람은 유다라고 한다. 여기서 밭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밭이 아니라 작은 농장이었다. 아마 자신을 위해 농장을 구입했던 것으로 보인다(1:18). 어느 기사가 정확한지는 역사가의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어쨌거나 이러한 초대 교회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는 참으로 나쁜 인간이었음에 틀림없나 보다.


우리의 관심은 유다에 관한 것은 아니다. 유다가 죽고 나서 초대 교회는 그의 후임자를 물색하였다는 사실에 우리의 관심을 두려한다. 보궐선거같이 자리가 빈 사도직에 새로운 사도를 세우는 일이었다. 알다시피 성경에서 열둘(12)은 상징성이 매우 강한 숫자이다. 예수께서 12사도들을 세우시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셨다. 교회는 새로운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며 사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12부족을 대표하고 있다.


사도가 되는 요건을 주목해 보라. 단순하고 명확했다. 복잡하지 않았다. 실상 한 가지 자격요건이었다. 사도는 예수님의 사역의 처음부터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자로, 즉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으실 때로부터 예수의 지상 생에 마지막 때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고 또 그것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행전 1:21-22) 그런 자격 요건을 갖춘 사람을 골라보니 두 사람의 후보자가 나왔다. ‘요셉’(바사바 혹은 유스도라고도 함)과 ‘맛디아’였다. 기도하고 하나님께 물었다. 누가 적합한 자인지, 누가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인지를 알려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사도를 뽑았다. 일종의 제비뽑기였다. 맛디아를 뽑았는데, “봉사의 사역과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로 뽑은 것이다.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기 때문이었다.”(행전 1:25) 제 곳이라면 아마 무덤이나 지옥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도직(使徒職)이 지금도 우리에게 전수되고 있는가? 우리들에게는 사도직이란 용어가 매우 생소하거나 우리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총회장이니 감독회장이니, 노회장이니 당회장이니 하는 직함을 익숙하지만 우리가 지금도 사도직을 전수받고 있다는 느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천주교는 그들 나름대로 교황이 초대교회의 사도직의 유일한 후계자라고 자처하기는 하지만 동의하기가 어려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직의 계승이 매우 중요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에서 느낄 수 있는 사도직의 계승의 중요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그 중요성은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세울 때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진리를 가르친다. 즉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언하고 증거(證據)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학교를 운영하는 하는 사람들이나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신학교수들, 지역교회의 목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당신은 정말로, 참으로 주님의 부활하심을 경험하였는가?”

본문에 근거하여 일 년에 한차례 정도 이런 예식을 하면 어떨까? 즉 유다의 배신과 배반을 기념하고, 예수의 지상 사역의 모든 측면에서, 즉 세례 때부터 승천 때까지 예수와 함께 걸어왔던 지도자를 새롭게 뽑았던 것을 기념하는 예식 말이다. 이런 예식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살펴보고 추악한 배반의 정신과 습성을 회개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갱신의 기회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달리 말해 우리가 어디에서 어느 부분에서 예수를 배반하였는지, 그리고 그런 죄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다시금 부활에 대한 신앙을 새롭게 하고 헌신하는 기회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회중들의 신앙을 좀더 새롭게 활기차게 하지 않을까 한다.  

추측하건데 유다는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그분의 부활하심을 증언할 수도 없었겠지. 참으로 안됐다. 죽었다가 다시 사신 그분께서 그 배반자에게 나타나 그를 감싸 안으시고 다시 세웠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그 배반자는 자기의 지도자를 위해 열정적 증언자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드로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배반자 베드로에게 나타나 그를 감싸시고 다시 세워주셨다. 베드로는 교회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유다가 아니라 베드로 말이다. 이게 삶인 것을 어떻게 하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는 한 가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부활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구별하고 차이 나게 한다는 것이다. 부활을 믿는 자들은 그 부활에 의해 온전하게 변화될 것이고,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변화되지 않는 경우 그것이 비극이다. 유다의 비극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사역자만이 사도직의 정당한 후예들일 것이다. 그들만이 예수의 부활을 담대하게 증언하고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하였는가?”


2009년 5월 6일 (수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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