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짜장면 한 그릇에 한번쯤 영혼을 팔아도 된다!”

 

 

[1] 은퇴하는 관계로 어제 연구실을 비우기 위해 혼자서 책을 싸는데 끝도 없었다. 그래도 나 혼자 며칠을 두고 책을 싸려고 했는데, 나 혼자 책을 싸는 어제의 사진이 화근이 되어 수원에 사는 제자 범의 박사가 화를 내며 “이러시면 제자 물 먹이시는 겁니다!”라고 노골적으로 대들었다. 나는 깨달았다. 공부를 마치고 박사를 따니까 이젠 스승에게도 맞먹는구나 하고 왕 우울했다. 그래도 어쩌랴, 내 새끼인데(ㅎㅎㅎ).

 

[2] 어제 일하느라 피곤했나보다. 오늘 아침 늦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경기북부 고양시에서 목회하는 또 다른 제자 용순 박사가 아침 일찍이 연구실에 도착하여 짐을 싸겠으니 그리 아시라는 일방적 통보 전화다. 헐. 헐. 헐. 부리나케 옷을 주워 입고 학교 연구실에 도착하니, 이건 또 뭔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졸업반 제자 두 명의 도사들이(고혜린, 백승현) 연구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어제 페북의 글을 보고 일찍이 달려온 것이다. 예수님의 빈 무덤을 제일 먼저 확인한 부활 증인이 여인이라는 사실을 아시는가? 혜린 도사가 그녀다. ㅎㅎㅎ 문을 열자마자 팔을 거둬 붙이고 책 싸기 시작한다. 곧 이어 작업반장 조용순 박사와 총무 이범의 박사가 일용직 근로자 복장으로 나타났다. 조금 후에 듬직한 김상훈 목사와 유상백 박사가 등장했다. 모두 선생을 위해 자발적 봉사를 하겠다고 오긴 했지만 실상은 짜장면 사준다는 유혹에 넘어간 불쌍한 제자들이었다. ㅋㅋㅋ

 

[2] 작업반장 조 박사의 진두지휘아래 2시간도 안 되어 책 싸는 일을 마쳤다. 한국 속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전도서의 한 말씀이 더욱 정확하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전 4:9).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적어도 오늘의 경우는 그들에게 짜장면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모두 인근 중식당 만다린으로 향해 총총 발걸음을 재촉했다. 짜장면을 사준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탕수육도 시켜야 나를 쫀쫀한 사람 취급하지 않을 것 같아서, 대자 탕수육도 시켰다! 각자 입맛에 맞춰 짜장면 곱배기, 특밥 등을 주문했다. 그런데 내가 시키지 않은 콜라와 사이다도 상에 올라왔다. 이건 뭐지? 어쨌든 거나하게 잘 먹고, 웃고 대화하고 나가 계산대에 카드를 꺼냈더니 누군가 벌써 지불했단다. 헐, 헐, 헐. 알고 보니 작업반장이며 최고참이며 나의 총무목사인 조 박사가 몰래 나가 지불한 것이다. 짜장면을 사겠다는 생색은 내가 내고, 돈 계산은 다른 사람이 했으니, 세상에~

 

[3] 커피는 내가 살 테니 말을 들으라고 소리친 후에 함께 걸어 넓은 카페로 갔다. 장장 2시간 이상 폭풍 수다를 떨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이야기로부터, 내 개인적 야사와 교수들 비하인드 스토리, 이른바 건전한(?) 뒷 담화는 역시 식후 연초(煙草)가 아니라 식후 카페인처럼 짱 제 맛이었다. 모든 피로가 다 풀리는 듯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쉬워했다. 이렇게 새해 셋째 날은 저물어 갔다. 참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였다. 웃고 즐거워하고 스스럼없이 대화하니 이 얼마나 멋진 풍경이 아니던가. 나만 그랬나? 아니지?

 

[4] 원근 각처에서 달려오겠다고 따스한 마음을 보내준 모든 제자들에게 한 가지 말을 함으로써 오늘의 일상 보고를 마치고자 한다. “짜장면 한 그릇에 한번쯤 영혼을 팔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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