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nbow Bible Class

“왜 교회에 조직이 필요하게 되었는가?”

행전 6:1-7

 

[들어가는 말]

 

갓 태어난 생명은 대내외적 도전과 난관에 직면합니다. 발육과 성장을 가로막는 생물학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주변 환경적 요인들 등 다양할 것입니다. 교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갓 태어난 예루살렘 교회는 비록 미약한 출발이었지만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도움으로 튼튼하게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증인 공동체로서 그들은 담대하게 예수부활생명을 전파하였고, 기도공동체로서 날마다 성령의 오심과 임재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인 사도들은 굳건하고도 일사불란하게 복음 전파의 선봉장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예수를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믿게 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열두 명의 사도들에서 120명의 신자들, 3000명의 개종자들과 그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신자들의 숫자는 성령께서 얼마나 강력하게 일하시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 징표였습니다. 이처럼 출생부터 교회는 신적 기관이었습니다, 달리 말해 교회는 사람이 만든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영적 기관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상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된 기관이기도 합니다. 초기 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입문하였습니다. 지리적 사회적 배경 역시 다양했습니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유대교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고 지리적 배경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지방 출신의 다국적 해외동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물론 사용하는 언어와 풍습도 달랐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에는 기근과 가뭄 등으로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저런 요소들을 고래해볼 때 초기 기독교회 안에는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킬만한 잠재적 불안 요소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최초의 갈등]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온갖 종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최초의 갈등에 대한 기록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두 개의 집단이 있었는데, 이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내지는 당시 지역의 언어인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입니다. 같은 유대인들이라도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교회 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한편 헬라파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들)로 지중해 지역 여러 나라들에서 살다가 인생의 말년에 고국인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과 습관은 당시 그들이 살았던 그리스(헬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해외에서 살았던 한국인 크리스천들(미국 교포, 캐나다 교포, 영국교포, 독일교포, 프랑스교포, 스페인 교포, 월남교포, 중국교포, 필리핀 교포 교인 등)이 말년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한국에서 쭉 살았던 크리스천들과 교회를 이루게 된 경우입니다. 문화, 언어, 관습, 사고방식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예수를 그리스도요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근본적인 일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여기서도 이해의 폭이 다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밖에 다른 일들에 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게 됩니다.

 

당시에 해외에서 살다가 귀국한 헬라파 크리스천들 가운데는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많았습니다. 생계의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들은 대개 정착하여 사는 유대 가족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내에는 히브리파 과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재정지출을 통해 매일같이 음식을 준비하여 과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였습니다. 식사대접!

 

[“매일의 구제”(1절)에서 “구제”로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니아”(diakonia)로 문자적으로는 “봉사”(섬김)입니다. 이전에 여러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맡긴 돈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을 구제했는데, 여기서는 특별히 먹을 것을 대주는 식탁봉사를 뜻했습니다. 디아코니아라는 헬라어에서 영어 디콘(deacon, 집사)이 나온 것입니다. 한편 “말씀 사역”에서 사역으로 번역된 헬라어 역시 “디아코니아”입니다. 사회봉사(재정관리 및 식사제공)와 말씀봉사(설교)는 동일한 봉사입니다.]

 

아직 교회에는 체계적인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입장에선 여간 고단하고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갓 태어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굳건히 세워져 갈 수 있도록 온갖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할 뿐 아니라 당시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유대교로부터의 심한 박해와 핍박을 견디고 이겨나가야 하는 일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 재정지출을 통해 교회 내의 가난한 사람들(과부들)이 먹을 음식까지 마련하여 챙겨주는 일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러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헬라파 과부들에게 가야하는 음식제공(구제)이 가끔 빠졌던 모양입니다. 그러자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제공되는 음식자리에서 빠지는 것을 알고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루어 볼 때 과부들에게 식사 제공하는 일은 주로 히브리파 사람들이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던 사도들도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공동의회를 개최하다]

 

교회 내적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자 문제의 심각성을 간파한 열두 사도는 즉시 교인총회를 열게 됩니다. 사도들은 모든 교인들에게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사제공 봉사(재정출납을 통한)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합니다.”(2절)라고.

 

사도들은 자신들의 본래적 사명과 임무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물론 가난한 과부들을 식사제공으로 섬기는 “사회적 봉사”(구제)가 덜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적 봉사는 마땅히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입니다. 요즘 말로는 긍휼사역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그런 일에 힘을 쏟으면 정작 해야 할 우선적 일 즉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분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고 전파하는 일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요,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조직을 만들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새롭게 각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봉사에 매진하기 위하여 교회의 조직을 구성하게 됩니다. 일곱 집사를 선출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은 왜 사도들이 최초의 교인총회(공동의회)에서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되었는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지 조직을 위한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내의 계급 제도를 만들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효과적인 교회 운영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이름은 공동의회였지만 사실 교회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였던 사도들의 일치된 의견을 알리는 기회였습니다. 사도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봉사에 힘쓸 터이니, 사회봉사(여기서는 과부들을 매일 같이 식사 제공하는 일)는 공동의회에서 선택한 사람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봉사자(집사)의 자격요건들]

 

사회봉사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자의 자격 요건을 보십시다.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3절)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5절)입니다.

 

(1) “너희 가운데서” - 신앙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신앙생활한 사람들 가운데서입니다. 다른데서 영입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간혹 교회의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돈을 주고 봉사자들을 사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마치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는 회사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가 교회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봉사자여야 합니까? “너희 가운데서”는 공동체의 형편과 처지를 깊이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외형적인 것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들 사이에 이뤄지는 관계들을 잘 아는 사람들, 함께 동고동락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2)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점이 사회적 기관의 임원을 선출하는 일과 교회의 직분자를 선출하는 일 사이의 결정적 차이입니다. 초기 교회가 성령으로 잉태되고 출생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교회 공동체에서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사람 역시 성령의 인도와 이끌림을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생각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완전 순복하는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따라서 초기 교회에서 사회봉사(과부 식사대접의 예)는 단순히 효율적 배분에 관한 계산에 능한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로운 분별력이 없으면 사적 관계에 끌려 일을 그르치는 일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혜는 일차적으로 분별력, 판단력을 뜻하지만, 긍휼의 마음을 갖고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려 깊은 마음을 뜻합니다.

 

(3)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있어도 사람들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를 섬긴 일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 보통사람들의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람의 재능, 학력, 학식, 외모, 재력 입니까? 부러움의 요소일 수는 있어도 칭찬의 대상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인품과 품성이 좋은 사람이겠지요. 신실, 성실, 충성, 정직, 겸손, 배려, 지혜, 온화, 강직, 긍휼, 후덕, 베품, 나눔과 같은 덕이 몸에 배인 사람을 사람들은 칭찬할 것입니다. 일명 미덕과 악덕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예, 딤후 3:1-5과 갈 5:19-21절에 언급된 악덕들, 갈 5:22-23의 성령의 아홉 가지 미덕들)

 

[봉사자들을 선택하다]

 

사도들의 진지한 제안을 들은 교인들은 그 제안을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힘쓰고, 교회내의 궁핍한 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힘을 쓰는 사람을 일곱 명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공동의회에서 교인들은 기도하고 신중하게 교회의 일꾼을 뽑았습니다. 어떤 방식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주사위를 던졌는지, 무기명 투표를 했는지, 공개적으로 천거를 했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7명의 봉사 책임자가 선출되었습니다. 선출된 일곱 명의 이름을 보면 모두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아마도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 크리스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구성원 분포를 볼 때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대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들을 봉사 책임자들로 선출했다면 이는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전체 회중이 선거에 참여하였습니다. 회중이 선택한 7명의 봉사 책임자들을 교인들은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먼저 사도들은 기도하였습니다. 아마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된 일곱 사람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안수(按手)는 말 그대로 손을 얹는 행위(laying on of hands)입니다. 안수를 어떤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안수 받는 자에게 신비로운 힘을 전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안수하는 것은 일종의 위임식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즉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임무를 사도들이 그들에게 위임하는 행위입니다. 이제부터 그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해지는 순간입니다.

 

갈등이 있었던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 다시 회복과 함께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게 되었습니다.”(7절)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즉 “예수는 메시아시며 주님이십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선물로 주어집니다!”와 같은 내용의 복음 선포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하나님의 말씀은 보통 세 가지를 가리킵니다. 첫째로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셋째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들의 설교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지나치지 말아야할 문구가 있습니다. “교회가 점점 왕성하게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게 되었다”(7절)라고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심히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이한 점은 유대교의 근간을 이루는 제사장들이 대대적으로 개종하여 이 신앙(한글에는 “도”로 되어 있으나 헬라어에는 “믿음”)에 복종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신앙이라 함은 예수를 부활하신 주님으로 믿는 신앙입니다. 갈등과 시련을 성경적으로 극복한 후에 찾아온 영적 대 부흥이었던 셈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1.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 생겨난 최초의 갈등은 무엇이었습니까?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교회 안에는 어떤 종류의 갈등과 다툼이 있습니까?

 

2. 교회의 직제와 직분이 생겨나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해 말해보세요.

 

3. 오늘날의 교회 직분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초기 기독교회의 직분제도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4. 교회에는 두 가지 “봉사”(섬김)가 있습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이 두 가지 섬김을 오늘날의

    교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5. 초기 교회에서 “섬김”의 뜻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6. 교회에서 봉사자(직분)를 뽑을 때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합니까? 오늘날에는 어떠합니까?

 

"주왕산 주상지에 가을이 물들다" 사진작가, 신실한 제제목사 신지균주상지 신지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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