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4 04:02
[67] 이사야 42:18-25
제목: 시력과 청력이 약해질 때
묵상 포인트: 당신의 영적 시력과 청력은 어느 상태인지 점검해 보십시오.
젊을 때는 시력과 청력이 좋습니다만 나이를 들면 청력과 시력이 약해집니다. 맨 눈으로 보던 책도 돋보기의 도움 없이는 힘들어집니다. 보청기를 끼는 노인 분들이 많습니다. 가까이 가서 귀에다 큰 소리로 말씀드려야 알아듣습니다. 생물학적 청력과 시력은 어찌 할 수 없습니다만 영적 시력과 청력은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보살피고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판단력이 흐려지게 됩니다. ‘보다’ ‘듣다’는 행위는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눈을 가졌다고 다 보는 것도 아니고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죽 했으면 예수님도 종종 설교 끝에 “귀가 있는 자는 들어라”고 하셨겠습니까? 영적으로 듣고 보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합니다. 훈련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야곱-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하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 땅에 실현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인이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하인은 그가 섬겨야하는 자들의 연약함을 돌봐야하는데(42:3-4) 자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도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귀머거린가? 내 충성스런 심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19,22절)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사야가 섬기는 ‘야곱-이스라엘’ 공동체는 군사적 패배와 바벨론 포로라는 끔직한 경험들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일들’(20,25절)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 자체가 눈이 멀고 귀가 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당신의 종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항로에서 벗어나 표류하는 배들에게 등대가 되라고 하시고, 사막을 지나가는 대상(隊商)들에게 나침반이 되라고 하시고, 새벽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사명 선언문(창 12:1-3)을 일상의 삶 속에 실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익숙한 말씀에 우리의 귀와 눈이 무디어졌습니다. ‘하나님-굳은살’이 박인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하십니다. 마침내 심판의 채찍을 가하십니다. 불치의 병, 벼랑 끝에 선 결혼생활, 사업의 실패, 깨어진 친구관계, 불면증 등으로 치셨지만 우리는 그 많은 일들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고집적이고 완고하게 됩니다. 혹독한 재앙을 당하면서도 마음을 더 강퍅하게 했던 이집트의 바로처럼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야곱-이스라엘’을, 여러분과 저를 꾸짖습니다. 너희가 여호와의 ‘길’, 즉 하나님의 ‘가르침’(‘토라’, 교훈)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은 것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당신께 죄를 범하였습니다!”라는 진정한 회개의 고백이 필요할 때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 주어진 ‘종’의 사명을 잘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