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2 02:16
[57] 이사야 37:8-20
제목: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묵상 포인트: 신앙은 탁상의 교리가 아닙니다. 언제나 현실 가운데서 자라야 합니다.
현실은 이쪽을 가리키고 믿음은 저쪽을 가리킬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합니까? 대답은 쉽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힐 때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손과 발이 따라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의 이야기를 기억해 보십시오. 부득불 갈라서야할 형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선택 밖에 없었습니다. 네게브 광야를 택할 것인가 여호와의 정원처럼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택할 것인가? 아브라함은 매력적인 소돔과 고모라 대신에 황량한 광야를 택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지금 아시리아의 강력한 군대들을 직접 맞대고 있습니다. 그라고 해서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믿고 있었던 신자였습니다. 그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만 합니다. 아시리아 왕의 편지를 받아본 히스기야는 고뇌에 빠졌습니다. 아시리아 왕의 말입니다. “그대는 아시리아 제국이 주변 모든 나라들을 어떻게 정복했는지 듣지도 못했는가? 우리 대왕들이 멸망시킨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는가? 고산, 하란, 레셉, 들라살 왕국들이 지금 남아 있는가? 하맛 왕, 아르밧 왕, 스발와임 왕, 헤나 왕, 이와 왕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다 아시리아의 말발굽에 멸망하지 않았는가? 나라의 왕이라면 이런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그런데 쥐뿔도 안 되는 당신의 나라가 안전할 것이라고? 당신이 믿는다는 여호와가 구원해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히스기야는 또 다시 성전으로 올라가 여호와께 호소합니다. 그는 아시리아 침략 사건에 관해 시종일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합니다. 국가 안전위원회를 소집한 것도, 전군 비상령을 내린 것도, 지하벙커에 들어가 상황보고를 받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런 비상상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한 것입니다. 평소에 쌓았던 신앙적 내공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물론 위기의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이 모든 일들의 궁극적 종결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해두는 일입니다. 성전에 올라간 히스기야는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16절). 이 기도문 안에는 히스기야의 견실한 신앙과 확고한 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상의 대왕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네 가지 고백들이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 기도 | 당신께서 우리 삶의 모든 문제들의 궁극적 종결자가 되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