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20 06:54
[50] 이사야 32:1-20
제목: 정의와 평화가 포옹할 때까지
묵상 포인트: 불의한 세상에서 크리스천들은 정의를 수립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쓴 책 가운데『정의와 평화가 입 맞출 때까지』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불의하고 착취와 폭력으로 얼룩진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회복되려면 먼저 정의가 선행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의로워야 평화(샬롬)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성경의 오랜 전통입니다. 특별히 구약의 예언자들이 꿈꾸고 바라던 세상이었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하여 구약의 정통적인 예언자들은 불의와 착취로 얼룩진 당대의 시국에 대해 사회변혁이나 혁명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대안(代案)의 세상을 제시하였습니다.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는 경구가 가장 잘 들어맞는 경우가 예언자들의 메시지입니다. 그들은 환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사회에 가져오실 나라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설파했습니다(예, 사 2,9,11,32장). ‘정의’가 수립됨으로써 ‘샬롬’의 시대가 도래(到來) 한다는 공식이었습니다.
정의와 샬롬은 언제나 함께 가는 짝꿍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정의와 샬롬이 포옹하는 날이 어떻게 온다는 말입니까? 먼저 그 나라는 인간의 노력이나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이나 명예나 자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샬롬의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부패하고 일그러진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역사상 사람들이 만들려는 유토피아는 언제나 피와 복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전 세계를 하나로 묶으려는 모든 시도들은 분쟁에 분쟁을, 전쟁에 전쟁을 더했습니다. 그러므로 샬롬의 세상은 신의 선물이어야 하고, 따라서 위로부터 내려와야 할 겁니다.
예언자들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영’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위로부터 부어주게 되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정의와 공의의 영입니다. 모든 것들이 원래 창조의 의도와 상태로 회복될 것입니다. 광야는 아름답고 비옥한 초원이 될 것이며, 포도원의 소출이 풍부할 것이며 거리는 안전하고 가정은 안식과 쉼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는 왕이 있을 것이며, 그 왕은 광풍을 피하는 대피소, 폭우를 가리는 피난처, 메마른 땅에 흐르는 냇물, 사막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내주(內住)를 기도합니다. 성령에 이끌려 사는 사람과 교회와 사회의 특징이 있다면 언제나 정의롭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의도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때 이뤄집니다. 하덕규의 노래 가운데 ‘풍경’의 한 구절은 이 사실을 멋지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정의가 구현되는 곳에 샬롬의 나라는 도래할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이 불의한 세상에서 정의의 도구가 되겠습니다. 도와주소서.